[미디어스=이정희] 유치원 교사 생활 중 아버지의 빚 때문에 찾아온 깡패들에게 봉변을 당하게 된 유연(정이서 분)은 엠마 수녀님 소개로 효원가의 메이드가 되었다. 주집사에게 할 일에 대해 지시를 받던 중 유연은 효원가의 손자를 '도련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다.
"왜 웃어요?“
"요즘 세상에 그런 호칭이 존재한다는 게 좀... 웃겨서“
그러자 날아온 건 '야!'라는 거친 외마디였다. 집사는 말한다. "여기는 어나더 월드야. 니가 겪은 바깥세상과는 다르다고. 엄연히 고용인과 피고용인, 철저한 갑을관계야. 모르고 까불면 너 다쳐. 언더스탠~?“
5월 8일 tvN 드라마로 첫선을 보인 <마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드라마’일 것이다. 드라마 <마인>은 최상류층의 삶을 주된 소재로 삼는다. 최근 이런 ‘어나더 월드’의 드라마는 2018년 작 <SKY 캐슬>을 시작으로 2020년 <펜트하우스> <부부의 세계>, 2021년 <펜트하우스 2>에 이르며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해가고 있다. <마인>의 백미경 작가는 2017년 <품위있는 그녀>를 통해 이런 장르 드라마의 효시를 연 바 있다.
장르가 된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우리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를 여는 건 현실 세상에 저런 곳이 존재하는가 싶은 공간이다. <마인> 역시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등장인물에 앞서 효원가의 대저택을 훑는다.
카덴차와 루바토라고 명명된 거대한 건물 두 채. 특히 효원가 회장 부부와 맏아들 부부가 사는 카덴차라는 건물은 십여 분이나 걸어야 할 것 같은 건물을 가로지르는 경사면을 전면에 배치하며 위압적인 재벌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곳에 효원가의 젊은 손자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제복을 차려입은 메이드들이 오간다. 효원가의 식구들은 차량 몇 대를 동원한 호텔급 만찬을 위해 저마다 디자이너 에디션 의상을 차려입고, 실내악단의 연주에 맞춰 휘황찬란한 조명을 밝힌 채 모여든다.
이렇게 드라마는 공간과 물질적인 외양을 통해 한껏 ‘다름’을 드러낸다. 그 다름은 그 공간 속에 살아가는 재벌가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 드라마적 장치로서 효과가 극대화된다.
효원그룹 한 회장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처럼 구축된 가계도. 고상한 노래 배우기의 끝은 결국 '청춘을 돌려다오'로 마무리되고야 말고, 메이드들을 향해 와인병을 던지고 막말을 일삼는 재벌가 안주인 양순혜(박원숙 분)야말로 이 고압적이지만 속물적인 재벌가의 ‘부조리함’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어나더 월드의 치정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 가진 것이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 같은 다른 세상, 그 세계를 이끌어 가는 건 '치정'이다.
<마인>은 더 가진 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뿐, 그 삶은 평범한 수준 이하라는 것을 드라마적 줄기로 삼는다. 그들은 가족이지만 관계는 물질적 욕망 앞에 무력하고, 서로가 더 가지기 위해 견제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데 거침이 없다.
<마인> 역시 복잡한 가족관계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한 회장은 세 자녀를 두었지만 그중 셋째 한지용(이현욱 분)은 혼외자다. 하지만 한지용은 본부인 양순혜의 두 자녀 한진호(박혁권 분)와 한진희에 비해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다. 첫 회 쓰러진 한 회장, 그의 후계를 둘러싼 복잡한 이합집산이 <마인>을 이끌어가는 주요 갈등구조가 된다.
거기에 더해 <마인>은 두 아들의 복잡한 가족관계를 얹는다. 두 아들 한진호와 한지용 부부의 자식들은 모두 현재 아내의 소생이 아니다. 이혼남인 한진호와 결혼해 재벌가의 후계 구도에 맞춰 수혁을 키운 큰며느리 서현(김서형 분), 역시나 두 살 난 아이가 있는 지용을 만나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한 채 둘째 며느리로 살아가는 서희수(이보영 분)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메이드와 프라이빗 튜터로 김유연과 강자경(옥자연 분)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마인'이었던 효원가가 위기를 맞는다.
제목 ‘마인'처럼 드라마는 이미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들의 '충돌'을 남녀관계의 역학 관계 속에서 풀어내고자 한다.
멜로드라마는 욕망을 기저의 정서로 자본주의 속성을 가장 솔직하게 대변하는 장르이다. <마인> 역시 그러한 멜로드라마의 기본에 충실하며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거침없이 까발린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는 현실. 시청자들은 갑의 파멸을 통해 현실의 상실감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그간 이러한 장르의 드라마에 호응해왔다. 시청률 6%를 훌쩍 넘긴 <마인>의 출발도 나쁘지 않다.
<마인>을 연 것이 살인 사건이듯, 이제 이런 드라마의 자극적 진행은 웬만한 범죄 드라마 수준을 넘어선다. 앞서 시즌 2까지 진행된 <펜트하우스>에서도 그랬듯, 욕망을 지켜내기 위해 온갖 범죄적 수법이 나열되고 결국 그 대미는 살인사건이 된다. 당연히 비슷한 구도의 드라마들은 앞선 드라마의 화제성을 이어받기 위해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 설정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부부의 세계> 김희애, <펜트하우스>의 김소연 등 이런 장르 드라마들은 대부분 중진급 여배우들의 연기력에 기대는 바가 크다. <마인> 역시 김서형과 이보영이라는 두 배우를 앞세우고, <경이로운 소문>을 통해 시선을 끈 옥자연의 기행을 통해 관심을 모아가고자 한다. 과연, 드라마의 제작의도인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서사가 될지, 그게 아니라면 또 한 편의 자극적 부조리극이 될지 <마인>의 여정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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