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은 동부그룹의 창업주인 김준기 회장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얘기가 있다.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세상이 온통 ‘돈 돈 돈’ 타령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지나치면 탈이 나게 돼있다. 이른바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돈에도 적당히 집착하고, 돈을 적당히 이용해야지, 모든 것을 돈에 의존해 해결하려다 보면 사고가 나게 되어있다.

이것을 온 국민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른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 의혹 사건이다.

▲ 한겨레 3월26일자 3면.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24일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창간 14돌 기념으로 주최한, <삼성의 배신, 나의 배신>이란 제목의 ‘인터뷰 특강’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삼성 이건희 총수 부자(父子)를 둘러싼 비리와 의혹은 25만명에 달하는 삼성그룹 임직원들 대부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삼성 비자금 비리나 의혹’이 아니라, ‘삼성 이(건희)씨 일가 비리’로 고쳐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이건희 부자의 비리에 직접 가담한 사람은 ‘몇 명의 가신(家臣)들’ 뿐이며, “아무리 확대해서 많이 잡아도 삼성 전략기획실(전 구조본) 관계자를 포함한 몇 십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 돈 때문에 망신당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이 바로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강원도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을 받은 뒤, 24일 자신의 선거구 조직책한테 뭉칫돈을 전달하다 선관위에 적발돼 파문이 심각해지자 공천을 반납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돈으로 일어서고 돈 때문에 망한 경우’라고나 할까?

왜 그런지 보자. 우선 김택기 전 의원의 ‘배경과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재미있다.

일본 제국주의 만주군관학교를 다닐 때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創氏)를 개명했고,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한 뒤에는 완전히 일본 사람 이름처럼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두 번째 창씨를 바꾼 박정희 소장이 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뒤 창당한 정당이 민주공화당이다.

1969년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켜 1972년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의 길을 여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세력이 이른바 공화당 ‘4인방(四人幇)’이다.

공화당 재정위원장이자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아버지인 성곡(省谷) 김성곤, 공화당 의장을 지낸 백남억, 공화당 사무총장을 지낸 길재호, 그리고 김택기 전 의원의 아버지인 고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이다.

이들 공화당 4인방은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연 뒤 공화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1971년 10월 당시 야당이 국회에 상정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안을 부결시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엄명을 거부하고 가결시켜버리는 바람에 박정희의 눈에 나고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이른바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 파동’이다.

그리고 1년 뒤에 박정희는 ‘10월 유신(維新)’이라는 이름의 제2의 쿠데타를 단행한다. 박정희는 어쩌면 1년 전 자신이 믿었던 공화당 핵심 4인방이 주도한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 파동’을 겪고 난 다음 국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영구집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김 전 의원,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다시 한나라당으로

아무튼 공화당 4인방의 한 사람이었던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의 장남이 김준기(63) 동부그룹 창업주이자 회장이고 차남이 김택기(57) 전 의원이다. ‘기관차’라는 별명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의원이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으로 강원도 태백·정선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에는 형님인 김준기 회장이 설립해 일으킨 동부그룹의 계열사인 동부화재해상보험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4일 정선의 한 주차장에서 선거운동원 김모 씨에게 돈다발을 전달하다가 선관위에 적발됐다.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은 돈다발을 건넸는데 이 비닐봉지에 수표 1천만원과 현금 3천1백만원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선관위는 25일 두 사람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정선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나라당은 김택기 전 의원에게 공천권을 자진 반납하도록 한 뒤 최동규 전 강원도 정무부지사로 후보를 교체한 것으로 보도됐다.

▲ 세계일보 3월26일자 5면.

김택기 전 의원은 1993년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당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 사장이었던 김택기 전 의원은 자신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와 관련 국정감사에서 위증을 했다가 고소당할 처지에 놓이자 국회 노동위 소속 의원들에게 돈을 건넸다.

김 전 의원은 그 뒤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그는 새천년민주당의 원내 부총무 등을 지내다,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말을 바꿔 탄 바 있다. 그리고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해 공천자로 확정되자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김 전 의원의 ‘철새’ 경력을 문제 삼아 공천배제를 주장했고, 최고위원회도 공천심사위에 재심사를 요청했으나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천 이유라고 한다.

김 전 의원은 동부그룹 창업주인 김준기 회장의 동생이고, 그룹 주력 계열사 중의 하나인 동부화재해상보험의 대표이사 등을 지냈기 때문에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김 전 의원은 세상 바뀐 줄 모르고, 돈의 위력만 믿고 돈 봉투를 돌리다 사법처리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동부그룹 창업주 김준기 김택기 가족 혼맥도 대단

그런데 다른 대부분의 재벌들도 그렇지만 김택기 전 의원의 형제와 자매들의 혼맥도 장난이 아니다.

고 김진만 국회 부의장은 두 부인과의 사이에 5남 3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인 김준기 회장은 세간의 의혹과는 달리 대학 다닐 때 회사를 설립해, 오늘의 동부그룹으로 성장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재벌 2세들과 달리 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부인 김정희씨는 삼양염업사 명예회장을 지낸 고 김상준씨의 딸이다. 김상준씨의 동생이 삼양그룹 김상하 회장이다. 삼양그룹의 창업주인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씨(작고)의 장남이 김준기 회장의 장인인 김상준씨고, 차남이 고려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고 김상협씨다.

김연수씨는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전 동아일보 창업주의 동생이다. 김성수의 장남이 김상만 전 동아일보 회장, 장손이 얼마 전에 작고한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이다. 증손자이자 김병관 전 회장의 장남이 김재호 현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이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장인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다. 김재호의 남동생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는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다. 김재열과 그의 손위 처남인 이재용은 중학교 동기동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기 전 의원의 전 부인 이양희씨는 김 전 의원의 부친인 김진만 국회부의장과 친했던 이철승 전 신민당 최고위원(전 자유총연맹 회장)이다.

김택기 전 의원의 큰누나 김명자씨는 임주웅씨와 결혼했는데,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의 부친은 한국 최초의 치약회사인 동아특산약화학 창업주인 고 임형복씨다. 김택기 전 의원의 둘째 누나 김명희씨의 남편 김평우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아들이다.

동부그룹 초창기 부터 김준기 회장과 함께 동부그룹을 이끌어 온 윤대근 부회장은 김준기 회장의 손아래 동서이다. 김준기 회장의 부인 김정희씨의 여동생 김정림씨의 남편이자 윤천주 전 문교부장관의 아들이기도 하다.

끝이 없다. 그만 줄여야겠다.

하여튼 갈수록 정치가 깨끗해지고 발전하며, 세상이 맑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돈 있다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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