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2차 드래프트가 실시되었다. 각 구단별로 FA선수 포함 40명의 보호선수를 지정하고,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 구단이 3라운드에 걸쳐 지명하는 방식이다. NC 다이노스가 창단함에 따라 신생구단에 보다 원활한 선수수급을 위한 방편으로 마련된 이 제도는 그동안 주전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취지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넥센을 제외한 모든 구단들이 활발하게 필요한 선수들을 지명하면서 처음으로 실시한 2차 드래프트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17년 전인 1994년 2차 드래프트와 유사한 형태의 트레이드 시장이 형성될 뻔하였다. 대신에 모든 구단이 참여한 것이 아닌 전력강화가 필요했던 삼성, OB, 태평양, 한화 이렇게 4개 구단이 아예 대놓고 트레이드 대상을 내놓아서 각 구단별로 전력보강에 필요한 선수들을 뽑는 형태로 '트레이드 시장'을 만들기로 협의한 것이다. 일종의 미니 드래프트였던 셈이다.

▲ 1994년 10월 27일자 경향신문

1994년 10월 27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동안 트레이드는 구단 간에 비밀리에 추진되었으나 좁은 협상폭과 자칫 협상이 불발될 경우 해당 선수의 사기에 미치는 악영향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아예 구단별로 트레이드 대상선수 및 원하는 선수의 명단을 작성, 한 자리에서 공개하여 각 구단이 폭넓게 선수들을 보강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투수력이 두터웠던 태평양은 대형신인 위재영이 입단함에 따라 최창호, 최상덕, 박정현, 박은진, 노승욱 등의 수준급 투수들을 내놓는 대신에 야수를 보강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94시즌 막판에 윤동균 감독에 대한 노장선수들의 항명사건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OB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투수 강병규, 김상진, 김경원, 타자에선 이명수, 이도형, 김종성, 임형석 등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을 공개 트레이드 대상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투수력 보강이 절실했던 한화와 삼성은 이정훈, 이종호, 강석천, 황대연, 지화동 (이상 한화) 강기웅, 정경훈, 김태룡, 이종두, 강종필, 한기철 (이상 삼성) 등을 트레이드 대상으로 내놓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각 구단이 공개한 트레이드 대상 선수 명단들을 보면 화려한 이름들이 꽤 눈에 뜨였다. 이들 선수들이 각각 유니폼을 새로 바꿔 입는 것이 현실화되었다면 상당한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3주 뒤 11월 18일 한겨레 신문에도 유사한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 1994년 11월 18일 한겨레 신문

한겨레 신문 기사에는 각 구단이 전력의 취약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활발하게 추진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내용은 경향신문과 다소 다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대상 선수의 맞트레이드 상대가 언급되어 있다. 투수력 보강이 절실한 삼성이 태평양의 안병원 또는 최창호를 염두에 두고 강기웅 또는 이종두, 동봉철과 맞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나와 있다. 또한 OB도 최창호를 탐내지만 그에 대한 내부평가가 엇갈리는 바람에 추진이 여의치 않다는 내용이고, 쌍방울에서도 박노준을 안병원이나 최창호의 트레이드 맞상대로 원한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위에 언급된 기사들대로 트레이드가 추진되었다면 사상 유례 없는 주전급 선수들의 옷 갈아입기가 펼쳐질 뻔하였다. 그러나 정작 실현된 트레이드는 그 해 12월 3일 한화 이정훈, 장정순과 삼성 정경훈, 정영규의 2대2 트레이드 뿐이었다.

그 이후에 트레이드 시장이 열리지 않은 배경에 관한 기사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성사되었다면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최창호, 돌핀스 유니폼을 입은 강기웅,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안병원, 돌핀스 유니폼을 입은 강석천 등등이 기사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17년 전에 이미 2차 드래프트 못지않은 선수이동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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