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알페스 처벌법'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문위원실은 '창작물'인 글·그림과 '편집·가공물'인 딥페이크 영상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을 나타냈다. 법무부 역시 같은 취지로 "정합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허구'의 글·그림과 '허위조작' 영상물은 다르다는 판단이다.

지난 2월 하 의원은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의 범위에 글과 그림을 포함시켜 알페스와 같은 글과 그림을 제작·공유한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알페스 처벌법'을 대표발의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오른쪽)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 1월 남성 아이돌을 소재로 한 성착취물 알페스·섹테(섹스테이프) 제조자 및 유포자 수사의뢰서를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행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허위영상물 반포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는 영상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된 영상편집물을 가공·반포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기존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부위를 컴퓨터 그래픽 처리처럼 합성하는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을 처벌하기 위해 신설된 규정이다. 딥페이크의 경우 실제 촬영된 영상물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해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근거에 따라 형법상 음화제조·반포죄에 의한 처벌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입법화됐다.

하 의원은 "최근 연예인 등 실제 인물을 소재로 동성 인물 사이의 노골적이고 사실적인 성행위가 묘사된 이른바 알페스의 무분별한 확산·공유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며 "허위영상물의 범위를 명확히 해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법안 취지를 밝혔다. 당시 하 의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함께 알페스를 제작·유포한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경찰수사를 의뢰했다. 국민의힘 박대수·백종헌·성일종·이명수·이주환·임이자·허영제·허은아·황보승희, 민주당 이병훈,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하 의원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알페스'는 'RPS'(Real Person Slash)를 한국어로 발음한 '알피에스'를 줄인 말이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장르문학('RPF', Real Person Fiction)에서 파생된 말로, 국내에선 팬픽(Fan fiction)의 한 장르로 일컬어진다. 알페스는 수위와 소재 등에 따라 성적대상화·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상상과 허구를 전제로 한 '창작물'인 글과 그림을 딥페이크 영상과 같은 허위영상물로 취급해 성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신설취지와 보호법익을 고려해 "개정안을 입법화할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제시했다.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현행법 제14조의2는 문언 그대로 영상물 등을 편집해 허위의 영상물 등을 제작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실제로 구성요건 또한 '사람의 얼굴·신체'와 같이 이미지를 전제로 하되 동영상을 고려해 음성을 포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합성·편집·가공하는 딥페이크를 폭넓게 해석해 그림을 현행규정에 포섭한다 하더라도, 글은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음란한 내용의 소설을 '창작'하는 것으로 그 행위 유형이 다르다"며 "같은 조항에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법사위 전문위원실은 "개정안이 처벌하고자 하는 글 또는 그림의 경우 표현의 대상에 특정인의 이름, 나이, 신체적 특징, 개인정보 등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글 또는 그림에 의한 인격권·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정도가 딥페이크에 의한 피해와 동일선상에서 논의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역시 '알페스 처벌법'에 대해 "사람의 얼굴·신체 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행위'와 '소설·웹툰에 노골적인 성행위를 표현'하는 것은 동일한 유형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같은 조항에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체계에 부합하지 않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밝혔다.

법무부는 또 "'특정 인물의 음성을 대상으로 한 글 또는 그림'을 사실상 상정하기 어렵고, 이를 성적 욕망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는 것 역시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무부는 "'제작'의 사전적 의미는 '재료를 가지고 기능과 내용을 가진 새로운 물건이나 예술 작품을 만들다'라는 것이어서 문구상 '글'과 호응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조문내용의 정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종합하면 하 의원 주장과는 달리 허구의 창작물인 '알페스'를 허위조작 영상물인 '딥페이크 영상'과 같은 선상에 두고 법률로 규정해 처벌할 수 있는지 의문이며, 개정안 내용이 논리체계상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하 의원 개정안은 지난달 16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한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하 의원 법안에 대해 여성경제신문 칼럼 <알페스를 처벌해야 하는가>에서 "명예훼손이 되려면 사실 혹은 허위여야 한다. 하지만 '허구'는 사실도 허위도 아니다"라며 "상상력을 처벌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알페스와 딥페이크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하 의원 주장에 대해 진 전 교수는 "알페스가 딥페이크와 동일하다면, 하 의원은 고릴라와 동일하다"고 꼬집었다.

오랫동안 팬덤 하위문화로 존재해 온 알페스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계기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성착취 논란에 대한 '백래시'(반동·역습)가 거론된다.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 중심으로 인공지능 챗봇에 성희롱 논란이 일자 실존하는 인물을 소재로 삼는 알페스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알페스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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