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예비후보인 김택기(강원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 전 의원이 24일 거액의 돈뭉치를 자신의 선거운동 조직책에게 건네다 적발됐다. 단순 사건 사고인가. 아닌 것 같다. 간단치 않은 사건이고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도 않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와 이방호 사무총장의 책임

우선 한나라당 공천 전반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 ‘돈 돌리려다’ 적발된 김택기 전 의원은 철새ㆍ비리 전력이 논란이 돼 공천 당시 여러 차례 재고 요청을 받은 인물이다.

▲ 한겨레 3월26일자 1면.
“무슨 생각에서 한나라당이 이런 사람에게 공천을 준 것인지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간다”는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의 말처럼 공천심사위원회가 김 전 의원 공천을 강행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형님공천 계파공천 철새공천 등 공천파문이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해명이 없을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파문의 심각성을 깨닫고 한나라당이 즉각 후보교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책임론이 남는다. 김 전 의원에 대한 공천을 강행한 공천심사위원회는 물론이고 당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이방호 사무총장 역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천을 강행하도록 종용한 배후도 캐야 한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아직 충분히 가시지 않은 한나라당 입장에서 총선 앞두고 할 일만 쌓여가는 셈이다. 후보교체 만으로 진화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자(26일) 아침신문들, 이 문제를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적발된 ‘돈 선거 파문’이라는 점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많은 언론이 이번 파문에 포커스를 집중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한나라당에 ‘프렌들리한’ 논조를 보이는 조중동.

조선 중앙 ‘면피성’ 보도 …· 동아는 ‘물타기’

▲ 조선일보 3월26일자 4면.
우선 조선일보. 대다수 신문이 1면 머리기사 혹은 1면 사이드 기사로 배치한 ‘돈 선거’ 파문을 조선은 1면에 ‘사진기사’로만 처리했다. 이미지가 주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인가. 일단 좋게 해석했는데 관련기사 4면을 보니 ‘속내’가 보인다. 좀 노골적이다.

<한나라 또 돈다발 악몽>이라는 제목의 이 3단 기사는 사건의 간략한 개요와 각 정당의 입장 그리고 한나라당의 ‘신속한 조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형적인 단순 사건사고식 보도행태다. 이번 파문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한나라당 공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말미에 한줄 언급하는 정도다. 요점 추리자. ‘면피성’ 보도다.

중앙일보 역시 마찬가지. 1면에서 이번 사건을 ‘간략히’ 언급한 게 기사로는 전부다. 본인들이 보기에도 ‘머쓱했던지’ 사설을 싣긴 했는데 ‘물타기’ 냄새가 난다. 일부 인용한다.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후보는 과거 국회에 대한 돈 로비사건으로 사법처리됐던 인물이다. 당적은 원래 한나라당이었다가 김대중 정권에서 민주당으로 갔고 이후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그래서 대표적인 ‘철새 공천’으로 꼽혔다. 이런 인물을 공천하고도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가 개혁공천 운운하니 민심이 심상치 않은 것이다.”

▲ 중앙일보 3월26일자 1면.
“우리도 비판했다” … 조중동의 ‘알리바이’ 만들기

한나라당 공천 문제점을 지적한 것 같지만 “이런 인물을 공천하고도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가 개혁공천 운운하니 민심이 심상치 않은 것”이라고 점잖게 한 마디로 하는 정도다. 민심이 심상치 않은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소리가 없다. 면피성 보도다. 우리도 비판했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알라바이일 뿐이라는 말이다.

동아일보는 아예 한나라당 돈선거 파문과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논란’을 동급으로 처리했다. 1면 제목이 <한나라 김택기 후보 ‘돈선거’ 공천 박탈 /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순위 6명 사퇴 파문>이다. 이번 돈 선거 파문과 민주당 비례대표 사퇴 논란이 같은 급으로 처리돼야만 하는 사안인가. 사건의 성격도 다르고 미치는 파장도 전혀 다른데 둘을 같이 묶으려고 노력한 동아의 노력이 눈물겹다.

▲ 동아일보 3월26일자 1면.
동아의 사설은 더 가관이다. 이렇게 주장한다.

“이번에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김 씨의 철새 전력과 전과를 문제 삼아 공천에 반대했으나 공천심사위원회는 무슨 까닭인지 공천을 강행했다. 애당초 공천에 문제가 있었지만 공천 탓만 할 수는 없다.”

애당초 공천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공천 탓이다. 오늘자(26일) 한겨레가 지적한 것처럼 “김 전 의원은 1993년 이른바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사건’에 연루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한나라당이 공천을 감행했다가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럼 공천 탓이다. 근데 왜 동아는 굳이 ‘문제는 있지만 공천 탓만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걸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