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이사회(이사장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가 '개방형 이사제' 취지로 운영되던 종교계 추천 이사 선임 제도를 4년 가까이 어기며 최근에는 아예 관련 조항을 파기하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세대 신학대학 동문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물론 연세대의 최초 설립자인 언더우드 가문까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연세대 사유화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 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4대 후손인 피터A언더우드가 증조부의 동상 앞에서 방우영 이사장의 '교단이사파송제도'에 유감을 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완
1957년 이후 연세대는 건학이념인 기독교 정신의 유지, 계승을 위해 4개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의 '파송이사제도'를 두어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교단 연합 신학 교육' 이념의 일환으로 언더우드 가문이 연세대의 설립 기득권을 포기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방우영 이사장 체제의 연세대 이사회는 이 조항을 파기했으며,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관련 정관 개정안을 승인했다.

21일 오후 3시, 연세대 신학대학 동창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이사회가 4개 교단파송 이사 4명과 협력 교단의 교계 인사 2명을 이사로 선임하도록 한 정관을 폐지해 건학 정신을 말살하고, 방우영 이사장이 연세대를 사유화 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사회의 이번 조치는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이 연세대를 조선일보 것이라 착각한 대단히 유감스런 사태"라고 규정하며 "방우영 이사장과 이사진은 한국 교계에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 "연세대가 소수 개인에 의해 지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와 같은 성격의 교단 추천 이사 제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언더우드 가문의 서한을 들고 있는 피터A언더우드와 언더우드 가문의 리처드 F 언더우드(원득한), 호레이스 H 언더우드(원한광)가 서명한 서한ⓒ김완

이날 기자회견 직후에는 연세대의 최초 설립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의 직계 후손인 피터A언더우드(한국명 원득한) 씨가 증조부의 동상인 연세대 언더우드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교단 파송이사제도를 폐지한 이사회의 결정에 우려를 표명하며 '정관 복구'를 촉구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4대 후손인 피터A언더우드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언더우드 가문의 형제들과 논의해 성명을 작성했다”면서 “언더우드 가문은 이사회의 급작스런 정관 변경에 깊은 우려를 갖고 연세대가 소수 개인에 의해 지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와 같은 성격의 교단 추천 이사 제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연세대 신학대학 동창회장 이진 목사ⓒ김완
앞서, 연세대 이사회는 지난 달 27일 방우영 이사장이 추천한 개방형 이사 3명을 추가하면서 기존 정관에 있던 '교단파송이사제도'를 폐지했다. 이 조치를 '폭거'로 규정한 연세대 신학대학 동문회 회장인 이진 목사는 "지난 2007년 사학법 개정 이후 방우영 이사장은 사학법 개정에 찬성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성공회 추천 이사의 임명을 계속 회피해왔는데 이는 방우영 회장이 사학법에 반대하고, 개방형 이사제도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진 목사는 "97년 취임 이후 연세대를 사실상 마음대로 운영해왔던 방 이사장이 급기야 지난 10월 27일 추경 이사회에서 기습적으로 교단 이사 추천 제도를 없앴다"며 "연세대를 방우영 씨 일가가 사유화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진 목사는 "방 이사장도 문제지만, 교과부도 문제"라며 "교과부가 연세대의 정관 개정안을 승인한 시점이 11월 1일인데, 불과 며칠 만에 정관 개정을 승인해 준 것은 정치적인 처리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으로 모든 일이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126년 전,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넓은 마음을 지닌 열린 기독교의 전파'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민족교육의 실행'을 설립정신으로 개교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조선일보 방우영 이사장 체제를 맞아 사학법 개정에 찬성하는 외부 이사들의 참여를 원천 봉쇄하며 탐욕스런 사유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 설립자의 후손은 물론 50여 년 전부터 학교 운영에 참여해 온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종단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방우영 이사장의 연세대 사유화 획책에 맞서겠다고 밝힌 연세대 신학대학 동문회장은 "방우영 이사장이 분명, 연세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 과정을 보니 그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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