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재조사 과정을 둘러싼 논란 중 하나로 '피의사실 공표'를 꼽을 수 있다. 일련의 사건과 보도는 법무부가 2019년부터 시행 중인 훈령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른바 '검찰발' 보도가 이어지는 한편 정부·여당측은 '선택적 피의사실 공표'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박준영 변호사가 언론 제보를 통해 '김학의 과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원인 이규원 검사가 작성했다는 '윤중천·박관천 면담 보고서'를 기사화한 보도들은 오보로 드러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 '김학의 불법 출금·청와대 기획사정' 의혹보도 '피의사실 공표' 정황

지난 1월 시작된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검찰 수사상황은 언론을 통해 사실상 중계됐다.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 검찰 과거사위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의 수사 상황은 단독 보도 경쟁의 소재였다. 수사 결과는 물론 검찰이 추가적으로 파악할 예정인 사안은 무엇인지, 주요 피의자는 누구이며 언제 소환조사를 받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보도됐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취재·보도의 자유 차원에서 언론의 수사상황 보도는 이뤄질 수 있다.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 역할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기소 이전 검찰의 수사 상황을 단정적으로 중계할 경우, 법적 판단 이전에 여론 재판이 불거질 수 있으며 이는 재판부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 보도가 이뤄지자 말을 아꼈던 청와대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피의사실 공표라며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다. 해당 의혹은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김학의 사건' 핵심인물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면담한 뒤 보고서를 왜곡·과장해 작성했고, 이 과정에서 이 검사가 자신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교감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이규원 검사가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검찰 안팎에선 당시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청와대 차원에서 김학의 사건을 부각하고 특정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검찰이 '기획사정' 정황을 대검 진상조사단이 조사했던 다른 '과거사 사건들'에서도 발견해 수사범위를 확대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지난 6일 '기획사정'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최근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에 '김학의-버닝썬-장자연' 사건 관련 청와대 보고용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검찰 수사팀의 이 같은 요청은 청와대를 향한 수사가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문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왜곡된 것으로 보고, 누가 이 과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6일 청와대측은 "그동안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 언급해 오지 않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검찰발 기사로 여과 없이 보도돼 이번에 입장을 밝힌다"며 "보고 과정에서 이광철 당시 선임행정관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청와대측은 "보도 이후 사실확인 결과 당시 법무부-행안부 보고 내용은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 대한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의 활동 상황을 개략적으로 기술한 것"이라며 "윤중천 면담과 관련한 보고 내용은 일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범계 장관은 "특정 언론에 특정 사건의 피의사실 공표로 볼 만한 보도가 나가고 있다.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진상확인을 지시했다. 이후 박 장관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최근 피의사실 공표가 관심을 끌게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번엔 니편 내편 가리지 않는 제도개선, 반드시 이루자"고 적었다.

또 박범계 장관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이 기소하기로 결론냈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수사는 타이밍이다' 이런 얘기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 여러 생각이 드는 시점"이라며 "공식 보고를 받은 바 없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사가 언론하고 매우 밀접하구나 하는 생각은 가졌다"고 말했다. 19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은 법무부에 수원지검 형사3부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대한 감찰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두 수사팀에 공무상비밀누설, 피의사실 공표 의혹이 있다는 취지다.

지난달 31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검은 전국 일선 검찰청에 법무부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지시했다. 대검은 "최근 수사 진행 상황, 각 청 지휘부와 수사팀 간 또는 각 청과 대검 수사지휘 부서의 협의 과정 등이 언론 등 외부에 공개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검찰 내부의 자유로운 의사 교환 및 합리적 의사 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며 '형사사건 공개 금지 규정'의 준수를 당부했다.

그러나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의 강수산나 인권감독관은 검찰 내부망에 대검 지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강 인권감독관은 주요 사건의 경우 언론의 요청이 있고 형사사건 공개심의위 의결을 거쳤다면 수사상황을 공개할 수 있고, 기자가 다양한 취재원을 통해 보도한 내용에 대해 유출책임을 묻는 것은 수사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8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법무부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고무줄 잣대?

박범계 장관의 발언은 '선택적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불러 일으키키도 했다. 비슷한 시기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대검 감찰부 명의의 자료를 발표하고, SNS에 감찰·수사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일자 박범계 장관은 "표현의 자유 범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우리 편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는 범죄이고 상대편에 대한 공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공익적 공표로 보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임은정 연구관은 국민 알권리 보장과 오보대응을 위해 감찰부에서 공개하기로 한 최소한의 정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 연구관이 공개한 대검 감찰부 명의 입장문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 수사팀 관계자가의 언론 인터뷰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증교사 의혹을 부인하며 수사자료 일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건정보 공개의 주체를 기관의 전문공보관(대변인 등)으로 규정하고 있어 '대검 감찰부' 명의의 입장문이 피의사실공표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수사업무 종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오보가 발생해 이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할 경우 형사사건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 박준영 변호사 '김학의 사건 보고서' 폭로와 언론

이런 가운데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원이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한국일보와 SBS에 '김학의 사건 조사 보고서'와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진상조사단원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을 제공하면서 보고서 왜곡·과장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해당 의혹에는 언론보도 문제가 얽혀있다.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접대 연루설,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골프접대 의혹, 김학의 전 차관 임명 배후에 최서원(최순실)씨가 있었다는 의혹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윤석열 전 총장 접대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는 해당보도가 오보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윤갑근 전 고검장 골프접대 의혹과 김학의 전 차관 최순실 배후설을 각각 보도한 JTBC와 KBS는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일부 패소했다.

박 변호사는 왜곡된 면담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진상조사단 최종보고서가 작성됐고, 사실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박 변호사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저도 반성하며 당시 상황을 밝히겠다"며 "진상조사단 단원들, 과거사위원회 위원들, 수사단 관계자들, 언론보도 책임자들 모두 손들고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적었다.

박준영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한국일보는 관련 보도에서 "문제는 면담보고서 왜곡 정도와 별개로, 허술하고 법적 근거도 모호한 면담보고서 내용이 공신력 있는 기구를 통해 확인된 내용처럼 세상에 공개됐다는 것"이라며 "그 내용이 언론 보도와 검찰 재수사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법원, 조사단, 사건 관계인까지 하나같이 윤씨 발언을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는데도 말이다"라고 보도했다.

진상조사단원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서는 조사단이 언론을 통해 '김학의 사건' 재조사에 대한 여론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던 것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일보·SBS 보도에 따르면 2019년 3월 14일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8팀은 기자단에 김학의 전 차관 공개소환 알림 문자를 배포했다. 8팀은 3월 31일 조사기간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조사단원들은 조사 기간 연장을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기간 연장에 부정적이었다.

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는 3월 13일 조사단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어차피 안 나오겠지만 공개소환을 때릴까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는 김학의 전 차관측이 조사단 연락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공개소환을 언급했다. 김학의 전 차관측은 이 검사의 출석요청에 답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검사는 "안 온다고 연락올 듯"이라며 "연락이 안 닿을 수도 있으니 뉴스로 알려드릴 수 밖에요"라고 했다.

14일 이 검사는 "기습출석에 대비 중이고 질문 사항은 다듬고 있다"며 "(조사단원 가운데) 교수님들 중 한 분이 메인 질문자 역할을 해주면 될 것 같다. 만약을 대비한 것이니 너무 부담갖지 말고 진짜 나오면 팔자려니 하라"고 했다. 이어 "기자들에겐 좀 미안한 감이 있다. 김학의가 안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진상조사단이 공개소환 알림을 언론에 전한 날,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2013년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동영상을 확보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다음 날 김학의 전 차관은 공개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조사단원들은 조사기간 연장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고, 3월 18일 문 대통령이 철저한 재수사를 지시하면서 조사단 조사기간이 2개월 연장됐다.

한편, 22일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박준영 변호사는 '김학의 사건' 조사 기록 입수경위에 대해 "조사단원으로 있으면서 남겨둔 것과 조사단을 나온 후 다른 분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에서 자료가 전달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혹제기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 인사로부터 받은 적 없다.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검찰 관계자로부터 자료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검찰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과 같기에 불쾌하다"며 "정치적이고 사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면 벼락을 맞겠다"고 말했다. 또 박준영 변호사는 애초 해당 기록을 한겨레에 제공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가 오보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제안을 했지만, 여러 이유로 제안을 스스로 철회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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