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빙상은 세계 최고로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메달을 딴 선수들 뿐 아니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들과 함께 했던 경쟁자, 동반자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빙상 강국 코리아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그에 따라 저변 확대, 훈련 환경 개선 등 질적인 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컸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열망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은 그 기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후 4개월이 지난 2011년 11월, 강원도 춘천에 안타까운 소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강원도 유일의 스피드 스케이팅팀인 춘천시청이 내년 3월, 해체를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 2001년 창단된 춘천시청 스피드 스케이팅팀은 제갈성렬 감독이 이끌고 이규혁, 백은비, 최승용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여럿 보유, 배출하는 등 강원 빙상의 자존심과 같은 팀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7년 춘천에 있던 ‘의암실외빙상장’을 운영 중단한 뒤부터 시 차원의 지원이 줄어들기 시작해 꾸준하게 다른 운동부로의 전환을 추진했고 결국 내년 3월 해체를 시 체육회 내부적으로 공식화했습니다.

▲ 한국이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통해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 강국으로 우뚝 선 가운데 그동안 국내 빙상인들을 배출해온 강원 춘천시 송암동 빙상경기장은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송암빙상장은 이규혁과 문준 등을 배출한 곳이다. 춘천시는 시설 노후에다 2010월드레저경기대회를 위해 빙상장을 철거한 뒤 주차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이로 인해 춘천시청에 있던 제갈성렬 감독과 여상엽, 최진용은 소속팀이 없는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워낙 갑작스런 해체 추진 소식에 빙상연맹을 비롯한 빙상인들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가대표 중장거리 선수이기도 한 여상엽은 춘천시청 게시판에 ‘꿈이 산산조각 났다. 죽고 싶다’는 글을 남겨 많은 빙상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습니다. 후폭풍이 그대로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동계올림픽 개최로 오히려 팀이 더 늘지는 못할망정 올림픽 개최 도(道)의 유일한 빙상팀이 사라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운동부 운영, 갑작스런 해체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체육계의 문제로 지적돼 왔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정치적인 이익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하루아침에 팀이 사라지고 소속팀 없이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 선수들의 사례가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1-2년 후에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체해 운동에만 집중하려는 선수들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한 것입니다. 국제대회에선 국위 선양을 했다며 칭찬해놓고 정작 평소에 제대로 운동할 기회조차 줄어들게 만드는 걸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케이트를 통해 자신의 장기를 최대한 살리고 지역을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다던 이들의 '소박한 꿈'마저 춘천시청은 그야말로 짓밟았습니다. 더욱이 춘천시청은 올림픽을 앞으로 치를 강원도 유일의 스피드 스케이팅팀입니다. 오히려 더 투자하고 지원해서 키우지는 못할망정 선수들의 추후 거취를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넘기고 해체 시기만 못 박아 놓은 것은 선수, 빙상인들 뿐 아니라 스피드 스케이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팬들까지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었습니다. 또 올림픽을 통해 빙상의 재미를 알고 빙상을 실제로 하고 싶어 하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뛸 기회를 잃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갑작스런 빙상팀 해체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거듭났다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내부 환경 수준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을 그대로 만천하에 알리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 빙상연맹이 춘천시청 측에 해체를 재고할 것을 요청하고 비교적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팀을 운영하는 권한이 시에 있는 만큼 빙상연맹의 요청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빙상계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처한 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지 주목되기는 합니다.

해체가 그대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지자체 운동부 문제와 관련한 또 한 번의 좋지 않은 사례를 남기게 돼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창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운동을 아예 못 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빙상계 뿐 아니라 체육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든 대책, 지원책이 '제대로' 세워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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