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늦은'이 아니라 '한발 늦춘'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최문순 전 MBC 사장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한 사실을 한겨레가 몰랐을 리 없으니까. 한겨레는 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이 끝난 다음날인 오늘(25일) 기사와 사설을 통해 최 전 사장의 행보를 비판했다.

한겨레는 <최문순씨 비례대표 공천 적절치 않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사장 퇴임 직후 정치권으로 직행한 최 전 사장과 그를 공천한 통합민주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 3월25일자 한겨레 사설.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재직 중의 불공정 보도에 대한 대가이거나 앞으로의 이용 가치에 대한 정략적 계산의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 마당에 방송의 최고 책임자인 최 전 사장이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게 되면, 재임 중 그와 동료 언론인들의 공정방송 노력까지 통째로 의심받게 된다. 불공정 보도의 대가로 공천을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법하다. 개인의 정치적 영달 뒤에 소속 언론사나 언론계 전체가 받을 신뢰의 위기는 다른 누구보다 크다."

한겨레는 사설 마지막에는 "무엇보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자존심과 긍지를 회복하는 게 먼저"라며 "그러자면 최 전 사장도 자신의 거취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이렇게 '세게' 비판할 수 있는 사안을 한겨레는 왜 공천 전에는 쓰지 않았을까. "우리도 비판했다"는 '알리바이'는 최 전 사장이 무사히 공천을 받은 다음에 만들어도 늦지 않는다 생각했을까.

매체비평지와 언론운동단체의 '침묵'…'이중잣대' 아닌가

한겨레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이날 사설은 진심으로 반갑다. 지난 18일 최 전 사장의 공천 신청 이후 매체에서는 처음 접하는 '본격적' 비판이기 때문이다.

▲ 3월25일자 한겨레 2면.

조선일보 등에서 MBC 노조의 성명을 인용 보도한 것은 예외로 하자.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소극적 비판' 또는 '침묵'이다.

한겨레가 오늘 처음 사설을 썼고 경향신문은 지난 22일자에서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묶어 최 전 사장의 행보를 비판했다.

'폴리널리스트'를 꾸준히 비판해온 매체비평 전문지들조차 최 전 사장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일 외부기고(김창룡의 미디어워치-한국언론이 퇴행하고 있다)에서 최 사장의 행보를 비판했을 뿐 기사로는 MBC 노조(19일)와 선임자 노조(24일)의 성명을 인용 보도하는 데 그쳤다.

한국PD연합회가 발행하는 PD저널은 지난 18일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을 함께 묶어 조심스럽게 보도한 이후 역시 노조의 성명을 인용 보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기자협회보 역시 지난 19일 MBC 노조의 성명을 옮긴 이후 후속 기사가 없다.

이들 매체의 오프라인 신문은 수요일인 26일자로 발행된다. 지켜볼 일이다.

언론노조 등 방송의 독립성, 중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언론관련 현업단체,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박성제)가 지난 19일 성명을 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 흔한 성명 한 번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최 전 사장의 원내 진입에 거는 기대가 크다. 당장 MBC 민영화 논란 등 언론계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방송 현장을 잘 아는 최 전 사장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다. 50대 초반 젊은 나이의 최 전 사장이 그 경험과 능력을 썩히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 기대나 주문과는 별도로 '정치권 직행'이라는 당장의 행보 자체에 대해서 언론, 그리고 언론운동 단체가 침묵한다면 '이중잣대'라는 저들의 비판에 맞서 내놓을 답변이 궁색하지 않을까. 낙천의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 비판을 유예한 것이라면 '진보진영'이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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