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현순 칼럼] 2021. 2. 25.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제307조 제1항(편의상 ‘사실적시명예훼손죄’라 함)은 다시 살아남았다.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현실화법(일명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전제로 위 조항의 폐지론이 집권여당에서도 논의되는 상황인 데다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진실유포죄라는 탄식까지 아른거리는 상황이니 어쩌면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있었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될 거 같으니 시험 준비 범위에서 제외하자”는 로스쿨생의 대사가 드라마에 등장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쨌든 위 조항은 5:4로 다시 살아남았다.

헌법재판소 다수 의견은 “1)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고, 2)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이 아니며, 3) ‘징벌적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고, 4)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하는 형법 제310조가 있으므로 이를 넓게 적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제한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5) 외적 명예침해를 방치한다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 성적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침해위험성이 있고, 6) 사적제재수단으로 명예훼손을 악용하는 것을 규제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재미있는 점은 징벌적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 현실이 위 조항의 합헌논거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민사적 구제만으로는 형벌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현실화법에 반대하는 강력한 논거 중의 하나가 언론의 감시와 비판기능의 위축 아니던가. 언론의 감시와 비판기능 위축을 내세우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입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인데,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여 감시와 비판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으므로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살아남는 상황이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수 없으니, 국민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어도 좋은 것일까.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위 논거 하나는 사라지는 것인가. 헌법재판소는 입법을 촉구한 것인가, 판단을 회피한 것인가. 무언가 이상하다.

표현의 자유제한 최소화를 위해 형법 제310조를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논거는 또 어떤가. 오로지 공익을 위한 행위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는 대부분은 언론기관이나 기자들이고, 개인이 위 조항으로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처벌범위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매우 매우 드물다.

위 결정 이후 특정 유명인으로부터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을 적시한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 또는 고발당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를 공개한 배드파파스 또한 비록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판단을 앞두고 있다. 헌재 반대 의견이 걱정하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위축, 공적 인물과 사안에 대한 감시나 비판을 위축시키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개인들의 영역은 어떠한가. 노인회에서 과거 자신이 경험한 피해사실을 공연히 말하였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은 “내가 경험한 범죄피해사실을 말했는데 어째서 처벌받아야 하느냐”고 억울해하고, (명예훼손) 피해자는 “저 사람의 거짓말을 왜 사실이라고 인정하느냐”고 항의하며 상대방을 처벌하고도 폭행가해자임을 확인받는 듯한 기이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기소되거나 유죄판결 받은 자가 ‘진실유포’를 확인받았다고 느낀다면 억제효과는 발휘될 수 없다. 최근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피해사실을 적시한 사람들을 고소한 사건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 적용에 동의한 것을 두고 변호인이 나서 ‘학교폭력을 사실’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며 고의에 대한 형법이론까지 보충하여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합헌과 위헌의견이 5:4로 팽팽하였고, 형사기소까지 이르지 않은 청구인이 형법규정이 직접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을 구한 사안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본안 판단까지는 나아갔다는 점 정도다. 기소 위험을 무릅쓰지 않더라도 위 조항 자체가 내가 하려는 표현행위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으니 진실유포를 원하는 국민은 부지런히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 명예훼손인지 진실유포인지는 계속 다투어질 것이다. 혹 조만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합헌근거 하나가 사라진다면 쉽게 판가름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 송현순 미디어피해구조본부 실행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0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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