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가는 길목에는 농성천막 하나가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로 꼭 200일째다. 국회가 대학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기를 바라는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의 노숙농성장이다. 계절이 세 차례나 바뀌는 동안 국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4월 9일 총선이 지나면 17대 국회는 사실상 임기를 마감한다. 하지만 5월 임시국회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그들은 오늘도 기다린다.

▲ 한겨레 3월18일자 35면.
겨울의 끝자락인데도 밤이면 칼바람을 몰아치던 지난 2월. 멀리 미국 땅에서 비보가 날아와 그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어느 여강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그녀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라고 말이다.

그녀는 이어 “귀국 초에는…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다.”고 말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치열하게 산 인생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이어진다. 교수임용을 둘러싼 대학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몸으로 보고 느낀 절망과 환멸의 토로이다.

대학강사의 자살은 그녀가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만도 벌써 여섯 번째다. 자식을 등지고 아니면 부모에 앞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의 애절한 사연을 누가 알랴. 대학강사는 시간당 3만~4만원쯤 받는 시급노동자이다. 그나마 방학 넉 달 동안은 수입이 없다. 정말 열심히 뛰어야 100만원쯤 번다. 노동자의 기본권인 4대 보험도 없다. 2008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4인가족 기준)가 126만5,848원이다.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처절한지 말하고도 남는다.

▲ 한겨레 3월21일자 33면.
전국의 대학은 지금 건축 중이다. 등록금을 해마다 올리더니 1,000만원 시대란다. 대학마다 땅부자이다. 2006년 사립대학 누적적립금이 6조8,503억원이나 된다. 그런데 대학은 돈이 없다며 수업의 1/3~1/2을 시간강사에게 맡긴다. 급료라곤 겨우 점심값에 찻삯 정도인데 6만여명이 여기에 명줄을 걸고 있다. 전공서적 한 권 사볼 처지가 아닌데 연구공간마저 안 준다. 학생을 가르치지만 법적으로는 교원의 지위조차 없다.

이런 착취구조로 대학발전을 말하다니 헛소리다. 나라 안에서는 큰소리치지만 세계 100대, 200대 대학에 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래세대를 가르치는 이들을 날품팔이 취급하면서 무슨 국가경쟁력을 찾나? 죽은 대학강사의 사회. 이것은 이 나라의 수치다. 17대 국회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절규에 귀를 기우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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