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이 부임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습니다. 8월 한일전 완패 이후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 약체 레바논에게 1-2로 일격을 당하면서 사면초가에 빠진 것입니다. 일단 내년 2월 29일 열리는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 쿠웨이트전까지는 지켜볼 것으로 점쳐지지만 만약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칫 거취 문제까지 거론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최근 하락세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준비와 철저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한 상황이 됐습니다.

한국 축구는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고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과시하며 다른 국가의 모범이 됐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에 졸전을 펼쳐 국민을 실망시킨 적도 많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장' 칭호를 받은 감독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도 많았습니다. 조광래 감독 입장에서는 처음 맞은 큰 위기에서 잘 된 감독들의 사례를 교훈 삼고, 실패한 감독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는 지혜를 보일 때가 됐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정면돌파했던 히딩크-허정무

▲ 거스 히딩크 감독 ⓒ연합뉴스
위기에서 어려움을 잘 극복해 성공한 대표적인 감독은 바로 거스 히딩크 감독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 감독이라는 치욕적인 비아냥을 들었음에도 소신 있는 팀 운영,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국을 월드컵 첫 4강으로 이끌었습니다. 월드컵 개막 4달 전까지도 답답한 경기력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정면돌파했고 3월 이후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컵 본선까지 상승 분위기를 이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허정무 감독도 위기 국면에서 잘 돌파해 마지막에 성공을 거둔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월드컵 최종예선 첫 번째 경기 북한전에서 졸전 끝에 1-1로 비겼을 때, 그리고 동아시아컵에서 중국에 0-3 참패를 당했을 때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술, 분위기를 바꾸는 모습으로 정면돌파해 그 다음 경기에서 달라진 경기력으로 경질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국전 참패 이후 일본전 완승, 코트디부아르전 승리의 기세를 이은 허 감독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끌고 대표팀 최장수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너진 쿠엘류-본프레레

반대로 위기 상황에서 이렇다 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감독의 대표적인 케이스는 히딩크 감독 후임으로 대표팀을 맡은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었습니다. 쿠엘류는 야심차게 한국대표팀을 맡았지만 베트남, 오만에게 완패를 당한 이른바 '오만 쇼크' 이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 독일월드컵 2차예선 몰디브전에서 0-0 무승부를 당하는 치욕을 겪고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히딩크 감독 재임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지원이 문제이긴 했어도 이렇다 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1년 여 만에 한국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어 들어온 조 본프레레 감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두고,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도 이뤄내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 0-2 완패를 당한 뒤 급속히 나빠진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홈에서 열린 동아시아컵에서 2무 1패, 최하위로 경질 여론을 받은 데 이어 홈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마저 0-1로 져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특히 고집스러운 팀 운영과 '왜 내가 비난받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자세가 팬들의 화를 사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감독이라 해서 모든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상 첫 케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아시안컵에서 졸전을 펼치다 결국 마지막까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물러난 박종환, 핌 베어벡 감독, 국민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나섰지만 1차전 멕시코에 1-3으로 패한 뒤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분위기를 뒤집지 못하고 0-5로 대패하며 자진 하차했던 차범근 감독 사례도 있습니다.

▲ 조광래 감독 ⓒ연합뉴스
'독이 든 성배' 정면돌파해서 변화하면 그래도 산다

연패나 하락세가 길어지면 곧바로 경질설이 나온다 해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팬을 갖고 있는 팀의 감독인 만큼 이를 스스로 잘 극복해낸다면 히딩크, 허정무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계기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수들을 지휘하는 것 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감독으로서 다른 역량들도 잘 보여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 조광래 감독은 어쩌면 지금 가장 힘겨운 싸움을 홀로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정면돌파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게 필요합니다. 히딩크가 되느냐, 본프레레가 되느냐는 조광래 감독의 향후 선택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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