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정치라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범진보 180석’의 영광이 1년 만에 뒤집힌 걸 보는 것도 그렇지만, 그 뒷수습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선거에 이겨 놓고도 안팎의 싸움을 해야 하는 반대편을 봐도 비슷한 느낌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언론 인터뷰에 보수정치권은 벌집을 쑤신 듯하다. 그간 대립각을 세워왔던 인사들이 나와 한 마디씩 한다. ‘스토킹’이라든가 ‘범죄자’라는 표현도 나왔다. 선거 승리를 이끌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사람이 그 이튿날부터 적극적인 대언론행보에 나선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해석은 여러가지로 가능하다. 먼저 인성론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원래 그런 인물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난번에도 그랬고, 따라서 이번에도 그런 거다라는 건데 완전히 틀린 얘긴 아닐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게 ‘섭섭론’이다. 선거에 대승을 거두게 해줬으니 대표로 재추대하는 것이 마땅한데 자기들끼리 당권 다툼을 벌이느라 아무도 붙잡지 않았다는 거 아니냐는 해석인데 그럴듯한 얘기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런 식으로만 해석하는 건 늘 한계가 있다. 정치는 대의명분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장이다. 정치에서 한 개인의 캐릭터를 논하는 것은 이 맥락 안에서 해석될 때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연속된 발언과 보수정치권의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있는지를 보는 게 먼저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진 지난 8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당사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메시지 핵심을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첫째, 안철수로는 안 된다. 둘째, 국민의힘 내에서 당권 경쟁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걸림돌이다. 셋째, 윤석열의 정계진출은 두고 보겠다. 적극적인 해석을 더해본다면 결국 정권교체를 가능케 하는 카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그나마 유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대권주자로서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태울 수 있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그를 활용하려는 중진들은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윤석열’ 대목을 빼면 당내 일부 초선들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영남꼰대당’을 탈피하자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해도 당권경쟁에서 ‘영남꼰대당’으로부터의 탈피가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냉정히 말해 크지 않다. 선거 승리 후 혁신의 실패로 ‘도로 자유한국당’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 이를 경우 윤석열 카드로 정권교체를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다음 계획은 무엇이 될까?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해왔다. 이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일부 중진을 제외한 국민의힘 다수가 탈당해 ‘윤석열 신당’에 가세하는 그림이 돼야 한다. 여전히 쉬워 보이진 않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움직임도 여러 변수를 통해 봐야하는 상황이다. 안철수 대표로선 국민의힘과 조기에 합당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조건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요구하는 ‘선통합 후전대’는 양쪽의 조직력을 고려할 때 지난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국면의 ‘입당’, 그러니까 ‘백기항복’ 요구와 사실상 같은 얘기다. 안철수 대표로선 새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정치적 협상을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게 유리하다. 동시에 잠재적 경쟁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제3지대 영역에서의 움직임도 곁눈질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을 보면 범보수통합 역시 당장 유권자의 기대감을 키울 정도의 속도로 진도를 내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재보궐선거는 패배했다지만 보수정치의 예고된 자중지란을 고려할 때 여당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패배 이후 얼마나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냐가 관건이다. 비대위 구성 국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에 실패했다. 아마도 다수파가 당선될 차기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하고, 이 비대위가 사실상 관리하는 전당대회에서도 주류의 선택이 안정적으로 보장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이해불가인 것은 아니다. 가령 비대위 권한을 무겁게 했을 경우 “비대위원장을 누구로 할 것이냐를 놓고 난투극 수준의 갈등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과거 보수정치가 친박 비박 할 때와 비슷한 정도의 ‘당내 야당’으로 비춰질 인물도 소수에 불과하기에 인적쇄신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메시지라도 바꿔야 한다. 초선의원들이 입장을 낸 것은 그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당내 강경론자들이 ‘초선5적’이니 하며 공격에 나서면서 이런 평가는 어렵게 되었다. 주요 인사들의 발언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쟁점 중 하나는 조국 전 장관 문제에 대한 반성이다. 당시 이 지면에도 썼듯 그 정도 됐으면 임명 강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그 결정이 정권이 내세우는 개혁에 대한 총체적인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고 추윤갈등이니 뭐니 해서 이 균열이 벌어져 온 끝에 LH 사태로 결정적으로 깨진 게 이번 선거의 결과이다.

일부 인사들은 조국 전 장관 문제가 패인이라면 지난 총선에서 어떻게 승리했겠느냐고 반론하는데, 뻔히 알면서도 하는 얘기다. 지난 총선은 K방역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작용한 것인 데다 과거 판단유보의 대상이었던 사건이 시간이 흐른 후 다른 사건과 함께 같은 맥락의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재보선 결과로 보수정치는 다스와 BBK, 국정농단과 탄핵의 굴레를 완전히 벗게 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보수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만한 일을 벌인다면 반드시 과거의 사건도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미 판단의 대상이 됐다고 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거다.

눙치고 외면하며 버티는 게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모르겠으나, 이번 선거의 결과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보여줬다. 무슨 득실 계산을 하더라도 자기들에 유리한 일에만 ‘개혁’이란 포장지를 씌우는 여당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강경론자들의 여론을 방패막이 삼는 것은 옳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당은 당원이 원하는 일을 대행하는 서비스센터가 아니다. 당원이 당에 해가 되는 일을 바라고 있다면 그들을 설득해 바람직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치의 일부이고, 그런 점에서 정치인의 의무이다. 이 의무를 왜 해태하는가? 결국 당내 선거의 이득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비겁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곧 원내대표 선거도 있고 당대표 선거전도 이제 시작인데, 누가 당선될지는 모르겠으나 떳떳하게 책임지는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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