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 받은 SBS 노조가 11차례 협상 과정을 공개했다. 강용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 권한대행은 사측을 향해 “임명동의제 폐지를 관철하기 위한 이 상황이 정말 대주주의 지시 없이 이루어졌냐”고 물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12일 “누가 합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지, 누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구성원들의 판단에 맡기려고 한다”며 노보를 통해 협상 내용을 공개했다. SBS 노사는 지난 1월 18일부터 11차례 ‘2020 단체협약’ 제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사측은 노조가 단체협약 14장에 명시된 ‘임명동의제’ 삭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2일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지난 1월 사측이 단체협약에서 임명동의제 관련 조항을 삭제하자며 노조에 보낸 공문(왼쪽), 2017년 SBS 노사 10.13 합의문 (오른쪽) (사진제공=SBS노보)

노보에 따르면 사측은 3가지 근거를 들고 나왔다. 우선 사측은 임명동의제 폐기의 핵심 논거로 ‘원인 무효’를 주장했다. 노조의 4차례 경영진 고발로 인해 임명동의제를 도입한 2017년 10월 13일 합의가 파기돼 현재 적용되고 있는 2018년 단체협약의 임명동의제를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주장의 전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현재 단협은 2018년에 합의된 것으로 10.13 합의와는 별개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사측은 “공정 방송을 위한 제도가 꼭 임명동의제여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불필요성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논의는 같은 수준에서 맴돌았다.

세 번째 쟁점은 임명동의제를 대체할만한 대안 마련은 누구의 몫이냐는 부분이었다. 사측은 지난달 12일 8차 협상부터 임명동의제 결함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임명동의제로 인해 상호 비방이 넘쳐났고 능력보다는 인기에 의존한 선거로 전락해 '분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측은 또한 임명동의제 결과를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는데 노조가 결과를 암시하는 표현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임명동의제의 결함은 제도의 기회 비용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그러자 사측은 임명동의제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고 말했고 노조에 그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노조는 지난달 19일 임명동의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조항을 신설해 제시했지만 사측은 기존 단협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며 노조의 제안을 거부한 뒤 2일 단협해지를 통고했다.

SBS본부는 “노조판단으로 협상 과정 속 노조의 주장과 반박은 이성적이었고 합리적이었으며 협의에도 성실히 임했다”며 “2차 협상에서 논의 가능한 부분부터 접근하자며 ‘투트렉 협의’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사측은 ‘노조의 제안이 옳다’고 동의한 6시간 뒤 첫 번째 알림문을 통해 여론전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현재 임명동의제가 명시되어 있는 단체협약은 노조법에 따라 10월 1일까지 유지된다. 6개월 내로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단체협약은 효력을 잃는다. 이 경우, 통상적으로 차기 사장이 지명되는 오는 11월 대주주가 임명한 사장이 선임된다.

10.13 합의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5개월 뒤 맺어졌다. 대주주인 윤세영 회장이 2015년 보도본부 간부들을 불러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고 도우라’는 취지의 지시를 거듭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윤 회장은 직에서 사임했다. 그해 10월 13일 대주주의 소유경영분리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 ‘임명동의제’다.

사측이 임명동의제 파기에 나선 시점과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만료 시점이 맞물려 과거 보도·경영 개입으로 물러났던 대주주가 현 정부 임기 말기에 과거로 회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강용주 SBS본부장 권한대행은 “박수택 기자가 <물은 생명이다> 코너를 할 때 해당 프로그램이 정부의 4대강 정책 및 태영의 사업 방향에 반한다고 태영 회장에게 직접 불려가 압박을 받은 과거가 멀지 않다. 태영의 인제스피디움 건설 이후 SBS의 예능과 보도 프로그램이 함께 인제스피디움을 홍보한 과거도 있다”며 과거 정부 당시 대주주의 보도 개입 사례를 밝혔다.

강 대행은 사측을 향해 “임명동의제의 전체 폐지를 관철하기 위해 SBS본부 전 조합원을 인질로 삼는 이 상황이 정말 대주주의 지시없이 이루어졌냐”며 “작금의 사태 자체가 소유 경영 분리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