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의 레바논전 졸전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팬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이번 패배는 많은 사람들을 납득하기 어렵게 했고, 실망감만 가득 남겼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기대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됐고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8월 한일전 0-3 완패 때만 해도 다시 만회하면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월드컵 3차예선 첫 경기인 레바논을 상대로 6-0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5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2승을 거뒀지만 화려한 패스 축구, 조직 축구를 보여주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결국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했고 쌓이고 쌓이다가 레바논 원정에서 일격을 당하고 무너졌습니다. 그야말로 조광래호 출범 후 최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베테랑, 리더가 없는 문제 '무조건 젊은 선수가 능사는 아니다'

조광래호가 보여주고 있는 문제점은 애석하게도 너무나 명확합니다. 먼저 구심점이 될 만한 확실한 리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알고도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광래호는 지난해 8월 출범부터 경험이 부족한 선수를 주로 발탁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적절한 '신-구 조화'로 이어지면서 나름대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지동원, 구자철, 윤빛가람, 손흥민 등이 아시안컵을 통해 대표팀의 주축으로 떠올랐고 잠재력 있는 선수들의 성장도 눈길을 모았습니다. 이 가운데 지동원, 구자철은 유럽 무대에 진출했고,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재미를 본 조광래 감독은 꾸준하게 이 같은 선수들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경남 감독 시절 '조광래 유치원'으로 불릴 정도로 선수를 키우는 능력만큼은 탁월했기에 이 같은 발탁은 대표팀 운영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경험이 적은 선수들로 엔트리가 채워진 반면 이를 전체적으로 컨트롤할 리더급 선수, 베테랑 선수가 사라졌던 것입니다. 지동원, 구자철, 윤빛가람이 아시안컵에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등 확실한 리더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남아공월드컵의 경우, 경험이 풍부했던 이운재, 이동국, 안정환, 김남일의 존재감 자체가 후배 선수들에 좋은 귀감이 됐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 이영표의 대표팀 은퇴 이후 그저 포지션에 맞는 선수들을 찾는 데에만 급급했고, 반대로 경험 있는 선수들을 오히려 뒷전으로 미루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전술 운영에만 집착하고 팀 분위기 등 전체적인 균형을 잘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 이후 주장으로 박주영을 발탁했습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박주영을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던 데다 경험도 풍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안정한 소속팀 문제로 오히려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캡틴이 불안정하니 이는 대표팀 분위기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고 8월 한일전 참패의 원인이 됐습니다.

팀 리빌딩 작업이 진행되면서 현재, 조광래호에는 차두리를 제외하면 대표팀 A매치 출전 경험이 50경기 이상 풍부한 선수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 이런 베테랑급 선수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데 그런 선수가 없다보니 경기력은 크게 흔들리고 해답 없는 모습만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정 선수 의존도 심화, 경기력 저하만 낳는다

▲ 조광래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확실한 리더가 없는 것만큼이나 큰 조광래호의 문제는 바로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것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전-비주전 간 기량 차이를 줄이는 해법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 시절부터 이 문제는 계속 제기돼 왔는데, 출범 초기 나름대로 많은 선수 실험을 하겠다고 했던 조광래 감독 시절에도 이 문제가 더 심화된 것은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전들의 조직력 강화 차원에서 조광래 감독은 베스트 11을 고착화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패턴을 미리 읽어주는 셈이 됐고,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만 가져다 줬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번 중동 원정 2연전을 앞두고 건강 문제로 엔트리에서 빠진 기성용 결장 케이스가 있습니다. 패스의 줄기 역할을 톡톡히 했던 기성용이 없어서 조광래 감독은 전문수비수인 홍정호를 끌어올리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고 이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기성용 외에도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청용, 이영표 은퇴 후 공석이 된 왼쪽 풀백의 대체자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것도 있습니다. 기량차가 있다고 하면 그 기량을 줄일 수 있도록 선수의 장점에 맞는 전술 운영,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는데 그런 시도 없이 '쓸 카드가 없다'고 조광래 감독은 아쉬워합니다. 자신의 전술에 맞는 선수만을 찾다보니 그런 것입니다.

주전으로 올라설 기회가 없으니 비주전 선수들의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주전 선수들의 의지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레 주전, 비주전 간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변화가 필요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큰 결단이 없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조금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팀 운영에 대한 전체적인 재검토 필요 '새롭게 생각해보자'

결과적으로 대표팀 운영과 관련한 전체적인 재검토,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조건 하나의 틀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상황에서 맞이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짜서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인 팀 운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선결 과제가 바로 팀을 확실하게 이끌 수 있는 리더급 선수를 키우는 것, 그리고 23명 모든 대표팀 선수가 주전급 실력을 갖춰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지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골고루 많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고 체계만 갖추면 원하는 그림은 그려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일관된 생각을 지키는 것보다 다양하고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스스로 변화해 새 판을 짜는 지혜를 보여주는 한국 축구가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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