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씨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전력을 기울인 탓일까. 지난 18일 저녁 방송사 메인뉴스는 KBS가 추진해온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토론회가 무산된 데 대해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KBS, 이명박 후보 초청 토론회 무산…한나라당 “사전협의 없는 질문 곤란”

KBS는 오는 21일 밤 10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 질문 있습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편>을 내보낼 예정이었으나 한나라당이 “사전 협의가 안된 질문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방송을 사흘 앞두고 무산됐다.

▲ 9월19일자 한겨레 8면.
KBS가 기획한 토론회는 ‘타운홀미팅’ 방식으로 일반 유권자 100인으로 구성된 국민패널이 직접 대선 후보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전문패널이 아닌 일반 유권자가 토론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이 후보자를 직접 검증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후보와 사회자간 2자 대담 형식에 UCC를 이용한 질문방식을 곁들인 대담위주 토론회를 갖는다는 전제 아래 구체적 협의를 벌여오던 중 KBS가 일방적으로 ‘국민패널 토론방식’을 통보해와 형식 수정을 요청했으나 KBS가 역시 일방적으로 토론회 무산을 발표해버렸다고 유감을 표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가 질문을 사전에 예측하고 답변을 조율할 수 없는 국민 다수와의 토론회에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PD연합회 “국민 검증 회피하면서 한 나라의 대통령 될 수 있나”

1:1 대담의 ‘효과’는 지난 13일 SBS와의 특별대담 <이명박 후보에게 듣는다>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SBS는 이날 밤 11시 방송에 앞서 <8뉴스>에서부터 대담 내용을 소개했다. 1:1로 진행된 대담을 인용한 보도는 자연히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 “고교평준화 정책을 재검토하겠다” “거주목적의 주택에 대해서는 세율을 대폭 조정해야 한다” 등 이 후보의 공약을 '홍보'하는 형식으로 흘렀다.

한국PD연합회(회장 양승동)는 18일 성명에서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국민의 검증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 결국 자신의 입맛대로 질문을 취사선택하고, 정해진 대본에 따라 질문과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겠다는 독재정권식 발상, 무개념의 발상이 아니던가”라고 비판했다.

한국PD연합회는 “공무원의 수장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에 대한 국민의 검증을 가로 막고, 스스로 검은 커튼을 치고 있는 것은 자가당착의 태도일 뿐이며 여론조사 지지율 1위라는 오만에 쌓여 그 지지율을 만들어 준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며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번 행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조건 없이 후보검증을 위한 국민들과의 토론회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개별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언론사가 대선 후보를 초청해 토론회를 갖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별다른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정치적 득실 계산’을 바탕으로 토론회 자체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이명박 후보의 행태가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다. KBS를 포함해 방송3사가 이 같은 문제점을 짚지 않은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이 신정아-변양균씨 관련 보도, 기자실 통폐합 관련 보도 등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한 ‘국민의 알권리’에 그렇게 높은 가치를 매긴다면, 정작 국민이 알고 싶고 알아야 할 유력 대선후보의 ‘꾸며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도 그만한 공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신정아씨 구속영장 기각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흥분하기보다는 대놓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에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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