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종임 칼럼] 지난 2018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미투 운동(#Metoo)은 국내 언론 보도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중의 ‘미디어 읽기’는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보도 방식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당시 성폭력 피해 여성이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면서, 성폭력 상황의 심각성을 자신의 목소리로 알리기도 했다. 여성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자신의 부당한 경험을 고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점을 우리 모두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언론사에 제보를 하거나 SNS에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적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 표지 사진

하지만 언론은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보도 행태를 갑작스럽게 바꾸기 쉽지 않았다. 피해자 인터뷰 질문 내용, 뉴스 보도에 사용된 언어표현 등에서 젠더 차별적 표현이 적지 않았다. 이후 국내 언론사들은 내부적 성찰과 변화를 모색했고, 성평등센터 설치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KBS는 2018년 11월, 사장 직속 독립기구로 성평등센터를 개소하였고, 2019년 4월에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방안 등이 담긴 성평등 기본규정을 마련하였다.

MBC 노사는 2018년 2월 단체협약 체결 때 성평등과 모성보호와 관련한 조항을 만들어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연장했고, SBS는 노조 내 여성위원회를 성평등위원회로 바꿔 인사·채용·출산육아·성폭력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서울신문은 노사 합의로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성평등위원회를 도입한 데 이어 남녀 혐오나 담론 생산을 위한 젠더연구소를 2019년 6월 설치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다. 2020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세계신문협회(WAN) 이니셔티브인 위민인뉴스(WIN:Women In News)의 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의 번역본과 해제를 묶은 <미디어를 위한 젠더균형가이드>를 발간했다. <젠더 균형가이드>에는 조직문화와 다양한 취재원, 기자의 비판적 시각이 모두 반영되는 것이 뉴스이며, 이러한 변화 없이는 대중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언론사들의 이러한 변화는 언론사 스스로 내부 조직문화를 성찰하고, 조직 구성원의 노동환경에서 ‘성인지감수성’이나 ‘젠더’에 대한 열린 시각을 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물론 각 언론사 내부에 설치된 성평등위원회의 역할이 원활하게 조직문화와 결합되고 있는지, 형식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도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명명하거나 N번방 사건 보도에서의 자극적 표현이 사용된 언론 보도도 적지 않았다. 또한 여성 연예인 관련 기사에서는 나이, 몸무게, 키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젠더 차별적이고 고정관념에 기반한 기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에서 문화면까지 모든 분야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구체적으로 표기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언론 보도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언론사 조직 내부의 자정적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대전 MBC 아나운서의 성차별 채용과 같이 언론사 조직 내부의 문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언론사 내부의 뉴스보도 가이드라인의 적용 가능성 등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지난 2019년 4월 4일 신문의 날 행사에 참석한 국내 신문사의 간부들 중 여성 간부는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국내 언론사의 현재적 상황을 보여준다. 해외 외신기자가 청와대 영문 트윗 계정을 리트윗하면서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국내 언론사 조직 내의 젠더 비율은 뉴스의 바로미터인 시청률과 구독률이 떨어지는 원인을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환경 탓만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사 조직 내부의 끊임없는 점검과 기자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SNS를 통해 미투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국내 언론사들은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 이종임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0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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