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자산어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김영민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 관심사를 밝혔다. 그의 관심사는 ‘모순적인 대상’이며 특히 요즘 주목하는 건 통치자와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둘의 관점과 어투가 다른데 한국 사회에서는 다스리는 사람이 여전히 비판과 저항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모순에 지적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아마 비판자 역할을 오래 하다가 권력을 손에 쥐며 생긴 현상 같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영화평론 분야의 첫 당선자로 등단하기도 했던 시네필 김영민 교수에게 흥미로운 텍스트일 확률이 높다.

<자산어보>의 주인공은 정약전(설경구)이다.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정 씨 삼 형제. 하지만 정조 사후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한 김 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천주교도였던 정 씨 삼 형제는 신유박해로 고초를 겪는다. 둘째 약종은 순교를 당하고, 막내 약용은 강진으로 장남인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된다. 비록 귀양살이 중이지만 호기심 많은 약전은 바다생물에 관한 책을 쓰기로 하고 이웃의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성리학의 도리를 버린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약전은 독학으로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던 창대에게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며 제안하고 창대는 못 이기는 척 수락한다.

영화 '자산어보'

홍어는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자미 다니는 길은 가자미가 안다

모순을 주요한 텍스트로 다루는 <자산어보>의 특징은 사대부인 약전과 서자 출신인 창대. 두 사람의 만남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약전은 사대부이지만 성리학을 멀리한다. 물론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니 사서삼경을 달달 외운 성리학의 대가이지만 실학부터 서학까지 지식의 저변을 넓혀가며 도움이 되는 건 어떤 것이든 가져다 쓴다는 실사구시의 태도가 몸에 익은 사람이다. 반면 창대는 서자 출신이라 과거를 볼 수 없지만 밤늦게까지 호롱불을 켜놓고 (이제 막 대학을 시작했지만) 사서삼경을 외고 입만 열면 조선의 뼈대인 성리학의 위기를 개탄한다.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스승과 제자로 깊은 정을 주고받는 두 사람. 그러나 시작점은 물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던 둘은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약전의 도움으로 나날이 학식이 깊어지는 창대는 스승에게 묻는다. 왜 목민심서처럼 성리학의 가르침에 기반한 수준 높은 글을 쓰는 대신 생선 배나 가르고 있냐고. 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다고 대답한다. 실망한 창대는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를 찾아가 호적에 넣어달라 간청해 양반이 되고 진사시험에 합격해 흑산도를 떠난다.

이상과 현실의 대립을 다룬 스토리라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시나리오를 잠깐 떠올려보자. 학식은 뛰어나지만, 현실과 괴리되어 이상만 외치던 책상물림 지식인이 위기를 겪는다. 고담준론은커녕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투박한 서민들과 부대끼다가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원래의 위치로 복귀해 선정을 펼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허나 이준익 감독은 평범한 캐릭터로 비범한 소재를 돌파해 독창적인 시선을 끌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영화 '자산어보'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다룬 <황산벌>의 진짜 주인공은 계백과 김유신이 아니라 실제로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 쫄병 거시기였다. <왕의 남자>는 갑자사화와 중종반정이라는 역사적 격변기에서 광대 장생과 공길, 연산군의 미묘한 애틋함을 소재로 삼은 파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자산어보>도 마찬가지다. 사대부인 약전이 죽는 날까지 생선 배를 가르고, 목민심서의 정신을 계승하려던 창대가 오히려 씁쓸한 패배를 맛보고 원래의 자리인 흑산도로 돌아온다. 그럼 이준익 감독은 현실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김빠지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정조는 약전은 물론 관객에게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너희 형제들을) 긴히 쓸 날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라고. 창대는 공부를 왜 하냐는 약전의 질문에 사람 구실 하려 공부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당찬 초심은 양반들 사이에서 멋들어지게 시 한 수 짓고 싶은 허영심으로, 입신양명해 가족들과 육지에 나가 번듯하게 살아보려는 욕심으로 변질된다. 공자님, 맹자님 말씀을 줄줄 읊던 창대는 하급 관리가 됐지만 가혹한 수탈을 조장하던 목민관, 자기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백성들을 쥐어짜던 아전들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낙향한다.

영화 '자산어보'

총천연색 거짓의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영화도 운명이 있다. <자산어보> 촬영은 2019년 10월에 마감됐다. 일반적이라면 2020년에 개봉해야 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2021년 3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모순이 주요한 소재인 영화이기에 보궐선거를 앞둔 지금의 개봉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심판을 외치던 이들이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던 이들이 심판자가 되는 지독한 모순 속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은 갈 길을 잃은 탓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뜬 자막도 인상 깊다. 자산어보의 서문에 상상력을 더해 쓴 허구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실제 자산어보의 머리말에는 창대의 도움을 받았다는 문장이 있고 다음과 같은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자산은 흑산이다. 나는 흑산(도)에 유배를 와 있어서 흑산이라는 말이 어둡고 무섭다”

동생 약용이 18년 만에 강진 유배에서 벗어나자 본인도 곧 한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거처를 우이도로 옮기지만 결국은 한양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정조에게서는 동생보다 형이 한 수위라는 평가를 들었으나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마지막까지 버텨내기는 했지만, 모순을 견디는 일이 약전에게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 두 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지 않아도 컬러는 시각 총량이 많아 페이크를 하면 넘어가지만, 흑백은 거짓말을 못 한다. 두 번째. 컬러(영화)는 역사의 인물이 우리에게로 다가온 것 같고 흑백은 우리가 과거의 인물로 다가간 것 같다. 거짓말이 어려운 흑백의 과거로 들어간다면 편하련만 우리의 세상은 너무 컬러풀하다.

두렵게만 보이던 검은 바다를 자신의 색깔로 물들인 약전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한 통은 온갖 거짓말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모순의 시대를 버텨야 하는 우리에게 약간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하지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 있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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