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10일 309일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왔습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 94명은 1년 뒤 복직을 약속 받았고, 복직하기 전까지 약간의 생활비 지원도 받게 됐습니다. 약간의 잡음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잘 마무리 됐다는 평가입니다. 김 지도위원의 희생과 희망을 함께 보고파 노력해 온 많은 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저도 한진중 해고 사태에 있어서만큼은 사내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을 정도로 적극 개입했었습니다. ‘기자가 왜 중립을 지키지 않느냐’ 많은 지적을 받았고요. 한진중은 저희 신문사에 제 행동을 비공식적으로 문제삼아오기도 했습니다. 다 일리 있는 지적이기에 먼저 미안하단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309일째만에 내려와 꽃다발을 목에 두르고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노조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해고자 복직 요구는 옳았다

지금 와서 말씀 드리지만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기자는 사실 앞에 중립적이어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여러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았을 때 서로 대립하는 쌍방의 주장에 모두 일리가 있다면 중립적 입장에서 보도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늘 그렇게 기계적 중립을 취할 순 없습니다. 질적 중립을 취해야 할 때가 무척 많습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사실들을 독자들이 다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론이 그 사실들의 해석을 돕는 나침반의 기능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한진중 해고사태를 대할 때가 그러했습니다. 여러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해고자들의 ‘해고철회 요구’는 정당했습니다.

일단, 한진중공업이 경영상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을 대량해고 할만큼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다면 사주일가에게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 174억원의 주주배당을 할 리가 없고, 쌍용자동차처럼 워크아웃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경영상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기는 태도도 옳지 않았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자신의 경영 실패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해고자들의 가슴을 울릴만한 진정한 사과조차도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해 온 노동자들에게만 오롯이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그런 태도는 옳지 않아보였습니다.

또 한진중공업이 2007년 3월 노조와 맺은 특별단체교섭합의서 위반 문제도 컸습니다. 한진중은 해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한 정리해고 등 임의로 구조조정하지 않겠다고 노조와 합의해 놓고 이를 어겼습니다.

언론은 이럴 때 판단을 해야 합니다. 복잡한 여러 사실들을 단순 나열해 독자들의 판단에만 맡길 것인지, 양쪽의 대립하는 주장들 중 어떤 것이 더 옳고 그른지를 알려주며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릴 것인지 말이죠. 한진중 사태의 경우에는 후자 쪽을 선택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상식적인 주장과 비상식적인 주장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상식적인 쪽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해고자들의 상식적인 주장을 팩트로 객관화 해내는 데 노력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10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농성 309일째만에 내려온 가운데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김 지도위원과 배우 김여진씨가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김진숙의 복직을 고민할 때

그러나 한진중 사태가 이렇게 잘 해결된 마당에 저는 한진중공업 쪽에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해고자 복직 결정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해고자 복직 선례를 만들지 않도록 경영계의 압박도 무척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국회 권고안 대로 해고자 복직을 결정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고맙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진중에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문제도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수언론들은 김 지도위원을 마치 외부세력인 것처럼 묘사했지만 그가 엄연히 한진중공업의 구성원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김 지도위원이 왜 한진중공업 노동자인지 좀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김진숙씨는 엄연히 1981년 대한조선공사에 용접공으로 입사했습니다. 김씨는 어용노조를 진짜 노조로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회사에 찍혔고 1986년 회사는 김씨를 조합원들이 거의 근무하지 않는 직업훈련소로 발령내어 버립니다. 그의 노조활동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서였지요. 김씨는 이에 불복하다가 ‘상사명령 불복종’으로 해고당했습니다. 이후 김씨는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였지만 별 성과는 없었고 군사 정권의 서슬 퍼런 위협에만 시달려야 했습니다.

1987년 김진숙씨는 대한조선공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 당시 재판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1989년 경영난을 겪던 대한조선공사는 한진중공업에 인수됩니다. 20년 후 2009년 11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보상심의위원회는 “김진숙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합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등에 관한 법률에는 사업주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별 다른 처벌 조항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김씨가 이 결정이 나오자마자 곧 바로 복직 소송에 들어갔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법을 잘 몰랐던 김씨가 이 절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진중은 김씨 스스로 복직소송을 철회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또 한진중이 겉으로는 김진숙씨의 재고용에 책임이 없는 척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씨의 복직문제를 고민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03년 김주익-곽재규 열사의 죽음으로 노사협의가 진행될 때 ‘김진숙씨 복직 문제는 추후 협의한다’고 분명 약속했습니다. 또 한진중은 2007년 노사 특별 교섭 때 김씨가 복직할 때까지 김씨에게 한달 200만원씩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제안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진중은 이제 심의위원회의 복직 결정을 따라 오랫동안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듬어줄 때입니다. 복직 대상은 이번에 합의된 94명이 아니라 김진숙 지도위원을 포함한 95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 정의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안타깝게도 한진중공업은 노사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업으로 너무나 널리 알려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진중이 이번 노사 합의를 잘 지키고 김진숙씨 복직 문제까지 잘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민들은 한진중을 다시 평가할 겁니다. 그날을 어서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희망버스와 함께 했던 모든 시민 여러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끝까지 웃으면서 투쟁한 여러분들이 우리 인류의 희망이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현재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기획취재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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