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문화와 창작에서 역사의 재현은 일상적 주제다. 하지만 현재 <조선구마사> 폐지에 얽힌 논란은 양상이 격렬하다. SBS 새 드라마로 방영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중국식 의복과 세트, 소품 등으로 시대상을 묘사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예컨대, 조선 시대 기방이 중국 객잔 같은 모습으로 꾸며져 있고, 중국 음식 월병, 피단 등이 차려져 있었다. 지난 2월 종영한 드라마 작가의 전작 tvN <철인왕후> 역시 ‘역사 왜곡’으로 새삼 논란이 되며 끌어올려졌다. <조선구마사>는 폐지되었고, <철인왕후>는 다시 보기 서비스 중단 결정이 나왔다.

현재 비난 여론이 압도적인 걸로 보이지만, 드라마는 창작물인 만큼 역사에 관해서도 상상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이 있다. 음식 평론가 황교익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대장금> 역시 역사적 기록대로 시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판타지 드라마의 특수성을 용납하라는 요지의 주장을 남겼다. 이 말은 창작물의 역사 재현에 관한 원론을 상기시키지만, 역사의 재현에 관한 논점은 좀 더 구불구불할뿐더러 매끈하게 나뉘어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지나간 시대의 기록과 유물을 바탕에 두고 구성되기에 여백과 공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드라마, 더구나 판타지 드라마와 같은 서사적 창작물이라면 그 형식부터 허구이기에 상상력을 펼칠 자유가 주어져야만 한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물에서 고증을 따지는 것이 부가적 쟁점 이상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서사물이라고 해서 100퍼센트 허구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허구는 역사에 관한 실재, 혹은 실재라고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토대가 있기에 대립항으로 성립하는 개념이다. 허구는 그 토대와 결합하거나 토대를 해체하거나 뒤집고 재구성하며 인식 작용의 효과를 생산한다. 사극에서 현실이 서사의 재료로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허구와 공존하는지, 그것이 어떤 양상으로 역사에 관한 기존 인식 혹은 현실과 충돌하거나 스며드는지는 경우마다 다를 것이며 거기 맞춰 개별적 비평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비평의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접근할 문제다. 방송 폐지, 방송 출연 연예인 밥줄 끊기 같은 극단적 접근이 늘 정당할 수는 없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생각건대, 어떤 느슨한 틀을 제안하자면 ‘강한 역사’, ‘단단한 역사’일수록 상상력의 자유도 강하게 주어져야 한다. 이미 사회에서 확고하게 공인되는 역사적 사실과 관점이라면 허구로 각색한다고 해도 혼선과 오인이 일어날 소지가 적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존중되지 않는 역사라면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고 역사적 지위가 흔들리기도 쉽다. 비교하자면, 아무리 허구의 창작물이라고 해도 사회적 약자를 재현할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치와 비슷하다.

<조선구마사>의 경우 단순히 창작물의 역사 재현에 국한 지을 논란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텍스트 외부의 상황에 영향을 받은, 민족 국가 단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저작권’을 두고 생겨난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사건이라고 봐야 한다. 격화되는 반중 감정과 김치와 한복 등 한국 문화를 표상해 온 아이콘의 ‘종주국’을 두고 중국과 논란이 생겨난 현실이 콘텍스트로 깔려 있다. <조선구마사>는 해외에 수출되는 드라마인데, 한국 역사를 표상하는 기호 노릇을 하는 소품들이 중국을 표상하는 기호로 바뀌어 있었다. 조선 시대 역사적 풍경에 관한 관념이 확고한 한국 내부에서는 시각적으로 색다름을 줄 수 있는 판타지 드라마의 연출, 그저 허구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 시청자들은 그런 관념이 없는 상태로 드라마를 접 할 것이고, 중국의 전통적 음식 및 복색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 경우 두 나라의 역사에 관해서도 은연중 인식의 혼선이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 굳이 민족주의 사관에 빠지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유산이 남의 것으로 바뀔 수 있다면 분노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현재 비판 여론이 이해할 만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창작물에 대한 일리 있는 반응과 왜곡된 관점이 뒤섞여 있다. 예컨대, 일련의 드라마들은 단지 역사적 유산에 대한 주권을 오도한다는 이유로만 비난받는 것이 아니다. 조선 태종, 최영 같은 위인들을 사실과 다르게 모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난 따위도 한 데 뭉쳐져서 거세다. 해당 장면을 본 소감으로는 일부 대사는 연출 맥락상 저 말이 왜 필요했을지 의아함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저토록 먼 과거의 유명한 위인이라면 말하고 다루는 데 엄숙함보다는 자유로움을 공유해야 한다.

그들은 신분제 국가의 왕이자 장군이었지만, 동시대 한국인들은 표현의 자유로 영위되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며, 과거의 위인들을 막연한 존귀함으로 대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해외 시청자들에게 한국 위인들에 관해 잘못된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판타지를 쓸 거면서 실존했던 인물을 집어넣은 게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하는 일, 허구성 강한 서사라도 실존 인물이나 배경을 집어넣는 정도는 관습적인 서사 연출 범주에 속한다. <조선구마사>를 떠나서 역사와 창작물에 대한 인식 지평을 넓히는 취지에서 저 정도 설정은 용인하는 게 좋다고 본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드라마 출연 배우들에 대해서도 비난이 인다. <철인왕후>에 출연한 배우 신혜선을 출연 중인 광고에서 하차시키라는 요구까지 들어갔었다. 드라마를 연출하는 데 따르는 가장 큰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지만, 출연 배우들에게도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드라마와 직접 상관관계가 없는 활동에 대해서도 보이콧을 시도하는 건 논리적 개연성이 없는 폭거다. 드라마 작가 역시 재중동포라는 소문이 퍼지며 비난이 가열된다. 비판할 것은 그의 창작 행위의 사회성이며, 출신 성분으로 사람을 비난하는 건 이주민 혐오로 흐를 수 있다. 이상의 상황은 역사 수호 의지가 민족주의 및 반중 정서, 넷 상에서 팽배한 온라인 청원 및 화력 동원 문화, 진영 싸움 문화와 결합해 극우화 되는 조짐이다.

현재 논란이 ‘역사 왜곡’이라는 프레임으로 통용되는 걸 상기해 보자. 외국과의 역사 분쟁에 관해 외부에 그릇된 인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특정한 논점을 넘어, 논란이 ‘역사 왜곡’이란 낱말로 표지 되는 건 흡사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할 정도로 변형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역사를 현재와의 관계망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역사 자체로서 신성화되는 경향,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폭거를 저지를 도구로써 남용되는 경향, 이번 논란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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