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임대차3법 시행 이틀 전 전세금을 기존 8억5천만원에서 9억7천만원으로 14.1% 인상했다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빛의 속도로 경질되었다. 사의를 밝혔는데도 수용이 된 것인지 안 된 것인지, 수용이 됐더라도 사퇴를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가 애매했던 다른 인물들과 비교되는 조치다. 선거를 앞둔 민심 이반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상조 전 실장이 했다는 일은 ‘악성’이다. 전월세3법 통과 당시 이미, 법 시행 후에는 5%까지만 전월세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그 전에 인상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다양한 경로로 제기된 바 있다. 이 정책을 주도하는 직위에 있는 고위공직자라면 우려의 불식을 위해 공사에 양면에 걸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김상조 실장은 그러한 우려를 스스로 증명하는 데에 있어 ‘솔선수범’했다. 이것 또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던 셈이다.

김상조 전 실장이 한 일이 위법은 아니기에,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이해나 납득의 범주 내로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다. 김상조 전 실장의 해명도 그런 취지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전셋집도 전세보증금이 올라 이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인데, 청와대 정책실장마저 정부 정책의 피해자(?)가 됐다는 점이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경우라면 이해의 여지가 있다.

대통령비서실 김상조 전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퇴임 인사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당한 것은 김상조 전 실장이 지난해 말 신고한 재산 중에는 예금 14억여원이 포함돼 있다는 거다. ‘하우스 푸어’가 아니라 ‘하우스 리치’였던 셈이다. 김상조 전 실장에 의하면 그가 추가 부담해야 했던 전세금은 2억원이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말이 되지 않는 해명을 내놓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상조 전 실장 문제의 파장은 단지 부동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아낀 인사 중 한 명이었고 본인이 이미 이전에 사의를 표명했는데도 유임됐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인사 문제로까지 불이 옮겨 붙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게 개혁의 대의가 무너지는 또 하나의 근거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할 시민단체 인사들이 개혁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방식으로 정권에 참여해왔지만 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건 시민운동에도 좋지 않은 효과를 남길 수밖에 없다. 개혁의 대의가 결국 ‘정파’로 대체된 결과만 남겼기 때문이다. 개혁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정파의 논리가 밀물처럼 밀려 왔고 시민단체 인사들은 정권 참여 논리로 쓸려 나갔다. 썰물이 빠진 이후 시민운동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뼈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개혁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는지란 의문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국면이고 그게 선거판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뒤늦게 고개를 숙이고 정부도 부동산 부패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개혁에 대한 근본적 의문과 신뢰의 상실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단지 일부 공직자들의 비위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투기는 한국 경제의 한 축이라고 할 정도로 뿌리가 깊은 문제이고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정치적 파괴력이 배가된 것은 그간 정권이 추진해 온 개혁 의제들이 이러한 문제에선 무용지물이거나 오히려 부패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LH 직원들의 투기는 3기 신도시라는 정책의 특수성으로부터 기인했다. 대토보상 확대 등으로 요약되는 이 특수성은 ‘빠른 공급’을 유도하면서도 부동산 추가 상승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이런 장치가 더욱 필요했던 이유는 다주택자 규제를 통한 민간임대시장 선진화와 이를 통한 간접적 개입이라는 이 정권의 기본 모델이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델이 서울 아파트값 상승과 갭투자 활성화 등 부작용으로 붕괴하면서 정권은 부동산3법이라는 ‘경착륙’을 용인하고 동시에 공급만능론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 후퇴한 해법조차 일부 공직자들의 ‘투기’ 먹잇감으로 소비됐다면 이 정권을 더 지지할 이유가 있겠는가? 집값과 전월세가 올라 피해를 보는 와중에 김상조 전 정책실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고 하니 국민의 마지막 신뢰까지 잃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의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는 보수정치가 정권심판론의 수혜자가 되어 전연령 전계층으로부터 ‘묻지마’ 수준의 지지를 받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별다른 전략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찾아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여당은 이 선거가 무슨 선거인지 지지층에게 설명하는 것에조차 실패하고 있다. 이 선거는 어떤 선거인가? 대통령을 지키는 선거인가? 개혁을 다시 세우는 선거인가? 박원순 서울시를 지키는 선거인가? 박영선 대망론에 불을 붙이는 선거인가? 여당의 메시지를 종합할 때 ‘이명박의 재림만큼은 막자’는 선거라는 결론이 유력하지만 이명박 씨는 감옥에 있으므로 이것도 제대로 된 지지 논리는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 달랑 하나를 들고 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 문제가 오세훈 후보의 약점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가벼운 해명과 처신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내곡동 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주장은 더 이상 믿기 어렵다. 거짓말은 공직자의 덕목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황이 ’셀프 보상’이나 ‘투기’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으면 선거 기간 내에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세훈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정권심판론을 누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게 안 되면 이 카드 하나를 쥐고 싸우고 있는 박영선 후보가 전세를 뒤집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

기왕 이렇게 됐으면 정권재창출을 위한 복기라도 철저히 해봤으면 한다. 개혁의 대의는 어디로 갔는가? ’정치인 윤석열’이라는 괴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애초에, 정말로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답을 낼 수 없다면 결국 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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