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3월 21일 방영한 tvN 금토 드라마 <빈센조> 10회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지난 몇주 동안 주인공들이 대놓고 '고구마'를 먹으며 바벨그룹-법무법인 우상과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벌이던 드라마는 10회 드디어 '사이다'를 내세우며 반격을 개시했다.

영화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세탁소 탁홍식(최덕문 분)의 가위 액션씬에 이어,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총격씬을 등장시키며 시원하고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위와 총', 이렇게 잔혹한 살상무기를 앞세워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게 된 건 바로 선한 악이 작동할 수 있도록 본연의 악이 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빈센조 상승세에 판 깔아준 사이코패스 재벌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그 판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이는 바벨의 실질적 오너인 장준우(옥택연 분)이다. 어수룩한 바벨의 인턴 변호사로 홍차영을 졸졸 따라다니던 그가 알고 보니 현 바벨그룹 회장 장한서(곽동연 분)의 이복형이다. 동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그는 세상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그 신의 방식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죽음을 재촉하고, 허수아비 이복동생이 맘에 안 들면 하키채로 구타하던 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그가 꿈꾸던 바벨의 사업에 태클이 걸리자 폭력적으로 발산되기 시작한다.

자신의 돈을 받아먹고도 거들먹거리던 남부지검 검사들을 납치, 하키채로 막무가내로 패서 죽여버린다. 또한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던 병원장의 말로도 다르지 않다. 결국 바벨제약의 신약 개발이 수포로 돌아가자 희생자 유가족들을 몰살한다. 그리고 빈센조가 보통의 변호사가 아니라 마피아의 콘실리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웃으며 '그럼 죽여야지'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출신 빈센조가 고객이 숨겨둔 금괴를 인출하고자 방문한 한국에서 바벨그룹과 얽히며 본의 아니게 '정의의 사도'가 된다는 설정. 드라마는 중반부에 들어서며 마피아 출신 변호사의 '장기'를 살리기 위해 바벨그룹 총수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한껏 발휘케 한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

그런데 '사이코패스'를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빈센조>만이 아니다. 역시나 상승세를 타고 있는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 역시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다. 특히 이 드라마는 대를 이은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키며 가장 악랄한 ‘상위 1% 사이코패스’ 찾기로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정 받은 두 임산부. 그녀들이 낳은 두 아이가 성장한 현재, 과연 누가 사이코패스로 폭주하고 있는가가 <마우스>의 관전 포인트이다. 이런 관전 포인트답게 아버지 사이코패스 한서준(안재욱 분)에 이어 이제 아들 사이코패스의 살인이 매회 잔혹하게 벌어진다.

사이코패스 찾기 드라마는 JTBC에서도 계속된다. 한 마을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둘러싼 형사와 범인들의 공방전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 <괴물> 역시 사이코패스가 빠질 수 없다. 어리숙한 슈퍼 아저씨로 등장했지만 사실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이규회의 연기가 화제가 될 만큼 드라마는 이 캐릭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어디 범죄드라마뿐일까. 시즌 2로 돌아온, 시청률 1위의 SBS 주말드라마 <펜트하우스 2>를 보면 범죄드라마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계단으로 밀치고, 날카로운 트로피로 찍는 등의 폭력적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목적과 욕망을 위해 사이코패스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사이코패스가 그렇게 흔한 존재인가?

JTBC 금토드라마 <괴물>, SBS 금토드라마 <펜트하우스 2>

시청자들은 결국 일주일 내내 드라마를 통해 사이코패스들을 만난다. 그렇게 사이코패스가 흔한 존재인가?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이다.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아 공감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 부족해 폭력성을 조절하기 힘들다. 이런 사이코패스들이 인류의 2%에 해당한다(『괴물의 심연』 제임스 펠런).

그런데 불과 2%에 해당하는 이들 사이코패스들이 요즘 대부분 드라마의 단골 악역이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답게 더 잔인하게 더 폭력적으로 악의 향연을 벌인다.

물론 타인과의 공감력이 떨어지는 반면,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사회적 지도층이 되거나 특히 최고 경영자 중 그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케빈 더튼). <빈센조>의 장준우처럼 그들의 무자비함이나 냉철함과 같은 면이 사회적 성공에 견인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인구의 1~2%에 불과한 사이코패스가 드라마 속 악역 캐릭터로 남발되고 있는 최근의 현상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개연성 따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가 더 악한가의 향연과도 같은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보는 드라마가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는 범죄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 듯한 현상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특히 <빈센조>의 경우 시작은 바벨그룹이라는 부도덕한 재벌과 거기에 기생하는 법무법인 우상, 그 뒷배를 봐주는 검찰의 커넥션이 드라마 속 '거악'이었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선 드라마는 구조적인 커넥션 대신, 재벌 회장의 사이코패스적 행태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적인 비리가 개인적인 일탈로 치환되어 가는 것이다.

법무법인 우상 역시 마찬가지다. 우상으로 스카웃된 최명희 검사(김여진 분)는 장준우와 의기투합한다. 거기엔 앞서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 홍유찬 변호사를 거침없이 제거했던 최명희의 범죄적 선택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악이 그런 사이코패스적 행태 때문일까. 외려 일상적이고 체계화된 악이 문제가 아닐까. 혹여 그런 구조적인 악에 대해 밀도 있게 파헤치고 대적해낼 서사의 부족을 '사이코패스'로 메꾸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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