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지 보름밖에 안된 이(석연) 처장이 인사권자를 향해 하기 어려운 ‘바른말’을 했다. 정부 각료와 대통령 참모 등 고위 공직자의 자리는 대통령 코드에 따라 움직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 오늘자(22일) 사설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 가운데 일부다. 이석연 법제처장이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구정권 인사 퇴진론’과 관련해 “단체장 사퇴는 국민과 당사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담고 있다.

이석연 법제처장의 발언 ‘칭찬’하면서 유인촌 ‘태도변화’는 비판

▲ 동아일보 3월22일자 사설.
이석연 법제처장의 이 같은 발언은 특히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태도와 대비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문화적인 사고’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할 문화부 장관이 ‘정치권력의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보수적 노선을 걸어왔던 이 처장이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드는 듯한 목소리를 낸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처장의 ‘소신’보다 더 이례적인 건 동아일보의 오늘자(22일) 사설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나 유 장관이 ‘구정권 인사 사퇴론’을 제기할 때 비중을 두며 힘을 실어주는 태도를 보인 곳 가운데 하나가 동아일보이기에 그렇다. 물론 논설위원의 칼럼 등을 통해 유 장관의 ‘오버’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동아의 기조는 ‘구정권 인사 사퇴’ 쪽에 기울어졌다는 평가다.

그런 동아가 갑자기(?) 사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도 노사모 논리로 집권했고, 그 논리로 계속 가다 국민과 멀어졌다”는 이 처장의 말에 “맞는 말”이라고 응답을 하더니 “이 정부에서는 더 많은 ‘이석연’이 나왔으면 한다”는 당부까지 덧붙인다. 오! 웬일?

사설에서 ‘서로 다른 주장’ 하고 있는 동아일보

그런데 놀라움도 잠시, 같은 공간에 있는 또 다른 사설 <흔들리는 유인촌 장관, 되살아난 노 코드 사장>을 보니 전혀 ‘딴소리’를 해대고 있다. 동아가 사설을 통해 이석연 법제처장의 소신을 긍정 평가했으면 당연히(!) 소신 없이 ‘홍위병 노릇’을 한 유인촌 장관을 나무라는 게 온당하다. 그런데 동아일보, 유 장관의 처신을 비판하기는 했는데 엉뚱한 걸 비판하고 있다. 왜 ‘기관장 사퇴론’을 주장하더니 갑자기 바꿨냐는 것이다.

이거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유력 일간지 사설에서 이런 ‘해괴한 짓’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슬며시 화가 치밀기도 한다. 독자를 우롱해도 유분수지 이거 뭐하는 짓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부분을 인용한다.

▲ 동아일보 3월22일자 사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정권에서 이른바 ‘코드’로 임용된 산하 단체장들의 거취문제를 맡고 있는 책임자다. 그런데도 그의 철학과 원칙이 불분명해 보인다. 닷새 전만 해도 대상 단체장들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사퇴를 촉구하더니 그제는 돌연 ‘대상이 됐던 많은 분들께 굉장히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한 발 물러섰다. 생각이 바뀐 것인가, 다른 이유가 생긴 것인가.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니 딱하다.”

딱한 건 유 장관이 아니라 동아일보인 것 같다.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니” 말이다. 유 장관은 그래도 시간차라도 있는데 동아는 같은 날, 같은 공간, 그것도 같은 사설에서 서로 다른 소리를 해대니 …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유인촌 장관보다 더 오락가락 하는 동아일보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 정권이 내건 가치와 신념에 따라 국정을 이끌어 가라고 국민에게 위임을 받았음을 뜻한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유 장관처럼 흔들려서는 노회한 좌파의 농성전(籠城戰)에 맞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동아일보 오늘자(22일) 사설 <흔들리는 유인촌 장관, 되살아난 노 코드 사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과 같은 날짜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에서 강조한 “정부 각료와 대통령 참모 등 고위 공직자의 자리는 대통령 코드에 따라 움직이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부분이 나란히 한 지면에 배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건 오히려 유인촌 장관이 아닐까 싶다. 유 장관의 오락가락을 비판하는 동아일보가 오히려 본인보다 더 ‘널뛰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력지 사설 수준이 이 모양이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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