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아름다운 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기는 졌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 한 팀에게 붙여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패자는 선수 또는 팀에게는 또 다른 영예가 되기도 합니다.

적어도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카타르 알 사드에 패한 전북 현대는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추악한 반칙을 저질렀음에도 너무나 떳떳해하는 알 사드와 다르게 전북은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축구를 했습니다. 운 나쁘게도 마지막에 웃지는 못했지만 전북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그 속에서 나온 활발한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는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명품 팀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단지 준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이 너무나 아쉬웠을 뿐이었습니다.

▲ 전북 현대ⓒ한국프로축구연맹

팬들이 원하는 축구 했던 전북-팬을 무시했던 알 사드

전후반 연장 120분 내내 전북은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했습니다. 탄탄한 조직력, 특색 있는 공격력 뿐 아니라 승리를 향한 의지, 정정당당한 플레이, 모든 면에서 전북은 돋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 한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났고 골을 넣지 못했을 때는 땅을 치며 아쉬워할 정도로 경기에 집중했던 전북 선수들이었습니다. 진짜 축구를 했습니다.

반면 알 사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수 개인의 역량은 좋았을지 몰라도 그들은 축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2-1로 앞서고 있을 때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며 온갖 연기를 다 펼쳤습니다. 관중을 때리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AFC의 배려로 결승전에 나설 수 있었던 알 사드 케이타는 갑자기 쓰러져서 온갖 연기를 펼치더니 들것을 들고 나간 학생들에 들리면서 오히려 화를 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부딪혀서 시간을 끌고, 크게 접촉하지 않았는데 접촉한 부위와는 무관한 곳을 부여잡는 알 사드 선수들의 비매너 플레이는 정말 짜증의 극치였습니다. 'We want to Fair Play'라는 걸개를 든 관중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래도 전북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알 사드의 어이없는 플레이에 크게 자극될 법도 한데 전북은 묵묵히 제 플레이를 다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5분 이승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고 정의가 살아있다는 말이 실현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려 있었습니다. 거짓말 같이 알 사드 선수들은 이후 '침대 축구'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력은 여전히 전북이 앞섰고, 우승의 꿈도 머지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골대를 세 번 때렸고, 결정적인 기회는 번번이 날렸습니다.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알 사드 키커 4명이 골을 넣은 사이 전북은 2명의 키커가 실축했습니다. 제대로 된 축구를 했던 전북이 지고, 반대로 축구를 하지 않았던 알 사드가 이기는 황당한 상황이 나왔습니다. 전북 선수들은 너무나 아쉬워했고, 경기를 응원했던 4만1천여 홈팬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땀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으니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분했습니다.

수준 높은 축구, 열정적인 관중 응원... 알 사드가 배웠으면 좋겠다

전북 선수들 역시 아쉬워했고 슬퍼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팬들 앞에서 보기 좋게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전북은 그들 자신뿐 아니라 팬들을 위해 모든 걸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우승을 차지한 알 사드는 철저히 그들만을 위했습니다. 어느 팀이나 자신들의 성과를 위한다고 하지만 알 사드는 그들 스스로 떳떳하게 축구를 했는지 의문을 갖는 기본적인 자세부터 전북에게 몇 수 배워야 했습니다. 경기에서의 승자는 알 사드였지만 축구에서의 승자는 전북 현대였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중에는 단 한 번도 크게 흥분하지 않고 K리그, 한국 축구의 우수한 응원 문화를 보여줬습니다. 이날 모인 4만1805명의 관중은 AFC 챔피언스리그 역대 결승전 최다 관중이었다고 합니다. 흥행 대박 뿐 아니라 수준 높고 매너 있는 응원으로 아시아 축구팬들을 흥분시켰습니다. 이 경기를 보고 밤에 방영된 유럽 축구 경기가 재미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곳곳에서 나올 정도였습니다. K리그 팀의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는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우리 스스로 K리그에도 평소처럼 많은 관중이 들어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단지 가장 중요했던 것, 경기 결과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보여준 전북 현대 선수, 팬들이 보여준 것은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고 대단했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알 사드 뿐 아니라 중동 다른 국가들이 좀 보고 배우면 좋을 텐데,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어쨌든 전북은 대단했습니다. '아름다운 패자'이면서 '진정한 승자'였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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