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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도 정책도 없는 ‘공천흥행’[기고] 김영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김영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 승인 2008.03.21 18:32

국회의원 선거가 채 20일도 남지 않았다. 과거 같으면 선거가 종반전으로 접어들어 접전이 치열할 때다. 이번에는 어느 정당도 전체 입후보자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선거가 임박해 유권자가 인물도 정책도 점검할 틈이 없다. 그런데 막판까지 전략공천이라고 해서 지역연고도 없는 인사들을 장기판 졸처럼 이리 저리 옮긴다. 정당이 후보자를 찍어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면 유권자는 표나 찍으라는 자세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100일 남짓에 총선거를 치르니 시간이 촉박하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승리에 도취한 채 친이, 친박이 당권투쟁에 몰입해 있었다. 통합신당은 참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호남 표를 엮는 합당을 이뤄냈지만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념논쟁으로 내홍하더니 내파(implosion)하여 핵분열하고 말았다. 다른 군소정당도 비슷한 형국이다.

   
  ▲ 경향신문 3월18일자 5면.  
 
절망의 어둠에 갇혔던 통합민주당에 한 줄기의 빛이 비쳤다. 그것은 변호사 박재승의 성역 없는 공천심사이다.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그가 범법자 추방을 선언할 때 설마했던 모양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세라며 돈의 향연을 벌렸던 그들을 도려냈다. DJ의 아들, 바른팔마저도 말이다. 대통령의 더러운 사면권이 환생시킨 그들을 단죄하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스타탄생이다.

인수위의 잇단 실축, ‘고소영’ 인사파동이 힘을 받던 안정론의 날개를 꺾었다. 숨죽이던 견제론이 고개들기 시작했다. 권력중독에 걸려 눈귀가 먼듯하더니 그것이 해독제가 되었는지 깨어나는 기색이다. 박 변호사의 공천원칙이 맞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도 뒤따르는가 싶더니 잡음을 넘어 역풍이 일고 있다. 범법자에다 노무현 정권에서 관록을 먹은 인사들을 공천했대서 시끌시끌하다.

범법자 추방이란 공천원칙은 국민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공천과정에 경선도 정책도 실종해 버려 정치를 후퇴시켰다. 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이 지방토호의 무대를 만들 공산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심사위가 전권을 휘두르는 방식은 비민주적이다. 소수의 심사위원이 그 짧은 시간에 수백명, 수천명의 신청자를 심사하니 공정성이 얼마나 담보될지 의문이다. 당원도 유권자도 참여가 봉쇄된 폐쇄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두 당이 닮은 꼴이다. 

   
  ▲ 경향신문 3월20일자 3면.  
 
물갈이라는 표현도 합당치 않다. 30%이니 하는 표현이 절대기준처럼 언론에 보도된다. 어떻게 현역교체비율을 계량화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현역의원 평가는 의정활동보다 더 큰 잣대가 있을 수 없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뽑지만 국민의 대표이다. 그런데  동네 일꾼을 뽑는 일로 아는지 안타깝게도 전국적인 현안을 위해 뛴 의원들이 여럿 공천에서 밀려났다. 이 또한 두 당이 비슷하다.

의회정치는 지혜를 존중하는 장로제(gerontocracy)를 바탕으로 발달해 왔다. 다선은 선거를 통한 유권자의 직접적인 평가와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 선수가 쌓일수록 특정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다. 그런데 다선을 부패, 무능의 상징처럼 여겼는지 숱하게 공천에서 배제됐다. 사회는 고령화되어 가는데 의회는 거꾸로 연소화되는 판이다. 이러니 초선의원이나 비례대표가 최고위원이 되는 파행이 일어난다. 의회정치의 퇴영이다.

통합민주당은 호남지역을 벗어나자 인재빈곤 탓인지 지탄의 대상들이 줄줄이 공천장을 거머쥔다. 자질도 능력도 문제지만 지난 정권의 정책실패를 책임질 사람, 비리연루자들이 말이다. 기세를 올렸던 공천개혁을 무색하게 만든 꼴이다. 한나라당도 다를 바 없지만 그곳에서는 당권투쟁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패장은 말이 없고 그의 휘하는 낙마하여 뿔뿔이 헤어지는 모습이다.

전략공천이라고 해서 TV화면에 많이 비춰 잘 나가는 인사들을 격전지에 투입한다고 야단이다. 선거를 인기인 뽑는 경연대회로 아는 모습이다. 큰 싸움을 잘 벌리면 작은 싸움은 그냥 먹는 전략이라고 한다. 언론도 무슨 운동경기로 아는지 열심히 부추긴다. 유권자는 뭔가? 겨우 선거 며칠 앞두고 얼굴이나 보고 찍으라는 소리를 해대니 말이다. 정당의 경우 선거일 45일 전에는 공천을 마감하도록 하는 제도정비가 시급하다.

‘공천흥행’이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한 단계 더 떨어뜨리고 있다. 당원도 국민도 정책도 없는 그들만의 잔치가 말이다.  

김영호 시사평론가·언론광장 공동대표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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