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처음 인천을 맡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반 시큰둥 반이었습니다. 남아공월드컵 16강 이후 처음 클럽팀을 맡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긍정론과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색깔의 팀 운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맞섰습니다. 이러한 여러 반응 속에서도 허정무 감독은 나름대로 팀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리빌딩 작업을 펼치면서 새로운 선수들을 믿고 출전 시간을 늘려나갔고, 이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올 시즌 중반까지 5-6위권을 맴돌며 순조로운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6월 이후 인천은 좋지 않았습니다. 패배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자꾸 놓쳐 승점 1점에 만족했던 경기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8월 이후엔 전혀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연패를 당했을 때 인천 팬들은 이를 참지 못하고 거센 항의를 했고, 허정무 감독은 팬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강한 질타를 받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결국 9, 10월 두 달 동안 2무 5패에 그치면서 시즌 13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성적으로 보면 분명히 허정무 감독은 실패한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허정무 감독 ⓒ연합뉴스

사장 퇴임, 선수 자살, 이적, 새 경기장 공사 중단... 악재의 연속 '직격탄'

허정무 감독이 맡은 뒤 인천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국가대표 최장수 감독을 역임해 월드컵 16강에 올린 최초의 국내파 감독이라는 면에서 분명히 허정무 감독의 역량은 인정받을 만 했습니다. 그런 역량을 그대로 새로운 클럽팀에서 발휘하려는 허정무 감독의 의욕은 대단했고, 그 의욕을 팬들이나 전문가들은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패배의식을 떨쳐내겠다는 그의 포부와는 반대로 팀은 시즌 중반 이후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구심점이 될 만 한 선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온갖 악재가 인천을 덮치는 바람에 어수선한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 시발점은 안종복 전 인천 사장 퇴임이었습니다. 안 사장은 사실상 인천 유나이티드를 현 위치까지 끌어올린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돼 왔습니다. 2003년 인천 창단을 주도해 8년 동안 인천을 최고 시민 명문 구단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던 안 사장은 그러나 정치적인 외압 논란에 휩싸인 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여기에 골키퍼 윤기원의 자살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기름을 더 부은 계기가 됐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자살에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았지만 그의 죽음이 프로축구 승부조작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인천의 분위기는 확 가라앉았습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주전 공격수 유병수의 승부조작 관여 논란 확산 등 후폭풍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코 하지 않았는데도 논란에 휩싸여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었던 유병수는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이적했습니다. 확실한 골잡이의 이적으로 인천은 이빨 빠진 팀이 되고 말았습니다.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는 유병수 대신 수준급 있는 공격수 영입을 기대했지만 구단 사정상 뜻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를 펼치기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또 다른 외부 악재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인천의 야심찬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던 전용경기장 숭의 아레나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공사비 수주와 경기장 유지비 확보를 위해 계획했던 기업형 슈퍼마켓 유치가 난항을 겪으면서 5개월 동안 공사가 안 됐습니다. 해당 지자체인 인천 남구청은 재래시장 상권 유지를 이유로 이 대형 마트 입점을 반대했고, 시공사 역시 공사 포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여기에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돈을 벌러 직접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시민구단 중에 그나마 탄탄할 줄 알았던 인천의 악재는 이렇게 외부적으로 계속 나타났습니다.

팬들의 질타, 초라했던 두 번째 시즌

한계가 있기는 했어도 선수들이 워낙 힘없이 경기를 펼치다보니 팬들은 화가 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책임이라면서 면담을 요청하는 팬도 많았습니다. 결국 구단에서 마련한 조촐한 행사에서 허정무 감독과 면담한 몇몇 팬들이 그 과정에서 강하게 질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허 감독은 "다 내 탓"이라고 했지만 '예의 없는' 서포터들의 날선 반응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팬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인천의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쳤고 허정무 감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결국 마지막 상주전에서도 결국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고 6승 14무 10패, 승점 32점, 13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2011 시즌을 마쳤습니다. 허정무 감독 입장에서는 참 생각하기 싫은 한 시즌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쿨하게 '내가 다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넘겼지만 홀로 겪었을 마음고생은 무척 심했을 것입니다.

전화위복 계기,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 열정은 응원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여러 악재들을 통해 허정무 감독은 더 높은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산전수전 온갖 어려움을 다 겪었다보니 경험이 적었던 선수들이 이 기회를 통해 많이 배웠을 것이고, 이런 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생겼을 것으로 본 것입니다. 여기에 선수 보강이 이뤄지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허정무 감독의 생각입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고, 멀리 내다보는 자세로 지지와 투자가 이뤄지면 인천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고 자신 있어 하고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국가대표 감독을 그만 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분명 주목할 일이었습니다. 과정이 좋지는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그의 별명 '진돗개'같은 끈질김이 엿보입니다. 때문에 강한 의지를 갖고 유쾌한 도전을 펼칠 그의 또 다른 시즌은 눈여겨 볼 만합니다. 설령 또다시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그가 보여주고 있는 의지, 열정이 조금이라도 빛을 발한다면 인천, 허정무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전히 허 감독을 지지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내년이 인천은 중요한 한 시즌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인천 감독 3년째에 접어드는 허정무 감독도 중요한 한 시즌이 될 겁니다. 숭의 아레나 건립이 가까스로 재개돼 내년 개막전을 목표로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 기회를 통해 인천은 새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특히 승강제 도입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이라 올해 같은 실패는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감독 생활을 한 이후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을 허정무 감독이 내년에는 얼마나 달라진 모습으로 인천 축구팬들의 실망감을 기대와 설렘으로 바꾸게 할 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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