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관의 비판, 경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전지적 검찰 시점' 보도가 도를 넘고 있다. 검찰이 관여하는 영장발부 과정을 모를 리 없는 언론이 수사착수 단계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으로 사건을 환원하고 있다.

8일 자신을 검찰 수사관이라고 밝힌 A씨는 직장인 익명 어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올린 글에서 "앞으로는 검찰 빠지라고 하니, 우린 지켜보는데 지금 상황에 대해 한마디 쓴다"며 "이 수사는 망했다"고 했다.

A씨는 "만약 검찰이 했다면, 아니 한동훈이 했다면 오늘쯤 국토부, LH, 광명시흥 부동산 업계 대대적 압수수색 들어갔을 것"이라며 "지금 이 논란 나온 지가 언제냐. 최소한 오늘쯤엔 영장받아서 들어가야 했다.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어제 윤석열 총장이 말씀하셨다. '공적정보를 도둑질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증거인멸할 시간 벌어준다', 여기에 답이 있다"면서 "지금 바로 토지거래한 애들 금융거래추적해서 나오는 데로 바로바로 불러서 피신받아야 한다"고 했다. 9일 경찰은 LH 본사 등을 압수수색 했다.

경찰이 9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에서 압수수색 종료 후 압수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당 글이 알려지자 관련 언론보도가 줄을 이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던 LH 압수수색… 증거인멸 시간은 충분했다>(조선일보), <'LH 투기 의혹' 뒷북 압수수색… "증거인멸 우려">(TV조선), <'LH 투기의혹' 7일만에야… 늑장 압수수색-檢빠진 수사>(동아일보), <수사도 못하는데…검찰 찾아 "LH, 경찰 도와주라"는 박범계>(중앙일보), <"LH 수사 망해… 한동훈이었다면" 비판 다음날 경찰 압수수색>(한국경제), <셀프조사에 증거인멸 시간도 충분… “정부, LH사태 심각성 과소평가”>(세계일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보도는 A씨의 글과 함께 경찰의 압수수색이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어줄 만큼 늦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3일 고발인·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뒤 5일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8일 오후 영장을 발부했다.

CBS 노컷뉴스는 10일 관련 보도에서 "사흘의 시간이 흐른 배경에는 안산지원 내부 절차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주말에는 영장전담판사가 출근하지 않고, 일반 판사들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선다. 긴급을 요하는 체포영장 등은 일반 판사들이 심사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영장전담판사가 출근하는 평일에 심사가 가능한 셈"이라고 했다. 이어 노컷뉴스는 "다만 검찰에서 영장을 청구하며 중대성과 시급성을 전달했다면 법원에서 주말에라도 심사할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검찰에서 별다른 요청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부동산투기 수사전담팀'을 구성했다. 사건 법리검토와 함께 경찰과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르면 LH 직원들이 내부 기밀을 이용해 투기를 했다는 혐의는 검찰 수사 영역인 '6대 중대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수사 진척상황에 따라 부패범죄 혐의 등이 발견되면 검찰의 직접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또한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영장청구권을 갖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협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공익감사 청구를 받은 감사원도 감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언론에서는 보수진영의 '검찰 배제' 프레임을 비판하고 있다. 10일 한국일보는 사설 <볼썽사나운 수사 주체 논란, 필요한 건 검경 협력>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만큼 이런저런 우려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진영 일각의 과도한 경찰 수사 비판은 정치 공세의 의혹이 짙다"며 "하지만 수사 착수 단계에서부터 수사 주체에 대한 불신을 표시하는 건 합리적 비판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경찰 수사를 노골적으로 폄훼하고 검찰에 대해 과도한 신뢰를 보냄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흔들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지금 중요한 건 경찰과 검찰의 수사주도권이 아닌 땅투기 의혹 근절을 위해 수사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사설 <수사권 조정 흔들기, 'LH 수사'에 백해무익하다>에서 "보수 야당과 언론이 이 사건 수사 주체를 두고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막 시행된 수사권 조정 법체계에 맞지 않을뿐더러, 수사 초기부터 경찰의 수사력에 대한 선입견으로 경찰을 흔드는 것은 수사 성과를 내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땅투기 비리의 발본색원을 원한다면 현행 법체계를 바탕으로 한 검경의 원활한 협력에 힘을 모아야 한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의 안착에 노력하기는커녕 흠집부터 내려는 것은 정략적 태도"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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