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석연 법제처장이 지금까지 표방한 이런저런 생각들, 이른바 ‘노선’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그의 보수적인 정치적 노선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보다는 그가 변호사로서 줄곧 주장해왔던 ‘노선’에 대한 회의가 더 크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이석연 법제처장은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시변)이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참여정부 시절 민변 등을 주요타깃으로 삼아 변호사단체의 권력화를 비판해왔다.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 창립선언문을 보면 “변호사 모임이 본연의 정신이 퇴색된 채 이념에 쏠려 권력화 내지 정치집단화 되는 현실을 경계한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을 정도다.

보수언론의 ‘지원’ 등에 업고 성장한 이석연 법제처장과 시변

▲ 조선일보 3월21일자 2면.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은 창립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은 단체지만 민변과 ‘맞설 정도’의 세력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민변이 법조계 진보적인 입장을 대변한다면 이른바 시변은 보수적인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시변의 이 같은 성장은 자체적인 역량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저변에는 보수신문의 ‘지원’이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이 말은 시변의 급성장 이면에는 창립 이후부터 이들의 활동과 입장을 주요하게 보도한 보수신문의 역할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와 민변에 대한 비판을 주요하게 보도한 게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정부에 참여한 민변 출신 변호사들을 거론하며 이들의 권력화를 비판했지만 이젠 이석연 변호사 역시 그 비판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 변호사의 법제처장 임명에 이어 시변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강훈 변호사가 법무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모임이 본연의 정신이 퇴색된 채 이념에 쏠려 권력화 내지 정치집단화 되는 현실을 경계한다”는 시변의 창립선언문과 이 두 사람의 행보가 그다지 조화롭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연 법제처장의 ‘노선’에 회의적이라고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래도 이석연 법제처장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보다는 낫다

▲ 한겨레 3월19일자 사설.
각설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석연 법제처장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보다 낫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유인촌과 이석연을 갑자기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을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렇다. 이석연 변호사는 법제처장으로 임명되기 전 ‘정치적 색깔’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사람인 반면 유인촌씨는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탤런트와 문화예술인으로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이석연 법제처장의 정치색이 더 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오히려 정치인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정치색’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최근 유 장관을 보면서 ‘폴리테인먼트’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구 정권 인사 퇴진론’이다.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단체장 사퇴는 국민과 당사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한나라당 논리로만 통치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헌법정신에 입각한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이 처장의 입장이고,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향해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나가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유 장관이다.

유인촌 장관은 ‘폴리테인먼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입장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 중앙일보 3월21일자 6면.
이 처장은 “어떤 권력자라도 가다 보면 처음과 달리 판단이 흐려지는 만큼 그때 직언을 들어야 한다. 초심으로 끝까지 가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고, 정부에서 자리를 맡은 사람도 초심대로 가야 한다. 소신에 따라 (직언)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유 장관은 한 신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정치권력의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

‘정치색’ 강한 이석연 법제처장의 ‘소신’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변호사 단체의 권력화를 비판한 당사자가 법제처장으로 ‘직행’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히지만, 첫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신’을 보면 적어도 그가 ‘자기성찰’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문화적인 사고’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할 문화부 장관이 ‘반문화적 발언’과 ‘정치권력의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비록 그가 ‘사과 발언’을 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진심인지는 모를 일이다.

이석연이 유인촌보다 나은, 아니 훨씬 나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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