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3월 7일 한국경제연구원은 보도자료 <빼앗긴 청년의 봄, 대기업 63.6% 상반기 채용 ‘0’ 또는 미정>을 발표했습니다. 이 보도자료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단순 보도가 아니라 ‘기업 규제 완화 프레임’ 확산을 위한 한국경제연구원의 목적을 충실히 대변합니다. 조선일보는 기사 <대기업 64% “채용 없거나 못 정했다”>에서 그 원인을, 한국경제연구원 김용춘 고용정책팀장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 ‘지난해 12월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돼 노조의 힘이 더 커진 것이 채용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도 사설 <대기업 64%가 채용 계획도 못 세우는 기막힌 현실>에서 “2017년 5월부터 밀어붙인 ‘소득주도 성장’ 정책부터 지난해 제정한 ‘기업규제3법’, 올해 들어 추진 중인 ‘협력이익공유제’ 같은 반(反)기업적·반시장적 정책이 꼬리를 물면서 불 보듯 예고된 일이었다”면서 맞장구칩니다.

하지만 이 설문조사 결과는 보도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설문조사는 일반적인 조사와 달리 대상이 누구인지가 명확합니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500대 기업이 그 대상입니다. 따라서 일부 응답자의 답변만으로 결론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이 설문조사의 응답 기업은 110개사일 뿐입니다. 일반적인 여론조사의 경우 1000개 답변의 신뢰도를 위해 성별, 지역별, 세대별 표본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최대한 신뢰도를 높이려고 합니다. 이 설문조사는 질문에 응답한 기업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2020년의 설문조사와는 달리 2021년 설문조사의 일부 문항은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설문의 1-2 문항의 첫 번째 답변은 “➀ 기업규제3법, 노조법, 중대재해법 등 과도한 규제입법으로 경영 어려움이 예상되어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반 이상인 51.1%가 ‘코로나19 지속으로 국내외 경제 및 업종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서’라고 답변했습니다. 고용경직성이나 높은 최저임금 등은 표본오차를 고려하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이 설문조사는 표본오차가 2020년의 경우 ±7.55%, 2021년에는 더 확대된 ±9.27%입니다. 20% 정도의 오차 범위를 갖는 것으로, 발표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조사 결과입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연구원의 이러한 설문조사는 실제 상황과도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을 고려하면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입니다. 2020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대기업 채용 조사가 실시된 기간은 2월5일~2월19일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직전이었다”며 “최근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대기업 고용시장은 이번 조사결과보다 훨씬 악화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는 전년보다 4.7%(12만3000명) 증가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와 다르게 코로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300인 이상 대기업의 취업은 증가한 겁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하는 설문조사는 의미 없는 조사로 보도해서는 안 됩니다.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의 더욱 큰 문제는 지난해와 다른 질문과 답변 분류 체계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0년 설문조사에서 첫 번째 질문으로 ‘신규채용 계획 수립 여부’를 내밀면서 “채용 인원이 없는 회사도 계획이 있는 것으로 응답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의 경우 “신규 채용 없음”의 경우를 별도로 분리해 답하도록 하고서 이를 채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분류했습니다. 처음부터 2020년과 다른 결과가 나오도록 설계한 겁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0년 설문조사 결과는 ‘작년보다 감소’ 19%, ‘작년과 비슷‘ 34.1%, ‘신규 채용 없음’ 8.8%, ‘작년보다 증가’ 5.6%, ‘채용 계획 미수립‘ 32.5%입니다. 그런데 한국경제연구원은 2021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면서, 2020년 결과 중 1번 문항의 답변에서 ‘채용 없음’ 8.8%만을 별도로 떼어냈습니다. 그리고는 2021년 설문조사 결과 ‘채용 없거나 미수립 결과’가 41.3%(2020년)에서 63.9%(2021년)로 전년 동기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부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20년의 결과 중 ‘작년과 비슷’을 지워 버렸습니다. ‘작년과 비슷’과 ‘신규 채용 없음’이 논리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설문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2020년 신규 채용이 없거나(‘전년과 비슷’ 포함)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기업은 75.4%였으나, 2021년 신규 채용이 없거나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기업은 63.6%로 줄어들었다”로 뒤바뀌게 됩니다.

2021년 설문조사에서 ‘채용 없음(17.3%)’을 2020년 설문 조사 답변 문항과 달리 신규 채용 계획 수립에서 제외함으로써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대기업 비중을 36.4%(2020년 기준으로 53.7%)로 축소하면서 위기감을 확대한 셈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1년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면서 ‘기업 규제와 경영 위기 프레임’을 확산하기 위해 사용한 꼼수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2020년 보도자료에서는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0년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126개사 중 27.3%는...”으로 발표합니다. 하지만 2021년 보도자료에서는 응답한 기업수를 드러내지 않고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1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열 곳 중 여섯 곳(63.6%)은...”으로 발표합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쓸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언론은 한국경제연구원의 꼼수에 당하거나, 공범이 됐습니다.

검증하지 않고 보도자료를 베껴쓰는 우리 언론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겁니다.

2021년 3월 8일,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

2020년 3월 8일,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