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리그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팀은 바로 제주 유나이티드였습니다. 만년 하위권이라는 오명을 벗고 정규리그 2위, 최종 2위로 시즌을 마치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제주 감독으로 부임했던 박경훈 감독이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술 운영으로 시즌 막판 무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서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이가 바로 박경훈 감독이었습니다. 그 덕에 박 감독은 지난해 준우승팀 감독으로는 이례적으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 U-17 대표팀 감독 실패 이후 3년 만에 박 감독에 대한 재조명도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제주 유나이티드는 지난해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시즌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잘 나가다가 여름이 지나면서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지며 순위가 거듭 추락했습니다. 결국 최종전 수원 삼성 전에서도 승점 챙기기에 실패하며 10승 10무 10패 승점 40점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6강에 오르지 못했고, 처음 얻은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기회는 조별 예선 탈락으로 일찌감치 목표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이 많았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화살은 박경훈 감독에게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 제주 유나이티드의 박경훈 감독ⓒ연합뉴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제주 유나이티드의 2011 시즌이 상당히 힘든 시즌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즌 전부터 안팎으로 바람 잘 날 없었고 어떻게 보면 마지막까지 6강 싸움을 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온갖 불운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제주 그리고 박경훈 감독은 끝까지 최선을 다 했고 10승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많이 아쉬운 성적이기는 해도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10승을 거뒀습니다.

선수 이적, 신영록의 의식 불명, 승부조작 연루설... 쓰나미 같이 몰려온 불운

제주는 시즌 전부터 주전 스타 플레이어 구자철의 독일 볼프스부르크 이적으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구자철의 유럽 진출은 지난 시즌부터 계속 제기돼 왔고, 박경훈 감독도 "선수의 미래를 위해 보내주겠다"고 해 왔지만 막상 구자철을 대체할 만 한 뚜렷한 자원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적 시장에서 몇몇 선수를 데려오기는 했어도 새 판을 짜기에는 다소 시간이 촉박했고, 그렇게 새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 박현범 마저 수원 삼성으로 '재이적'시키면서 일은 더 꼬였습니다. 팀 전술의 핵심 역할을 했던 선수들의 잇단 전력 이탈로 제주는 시즌 중반 이후 힘을 잃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야심차게 도전했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예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 더 큰 일이 시즌 중반에 터졌습니다. 5월 8일, 제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구FC와의 경기 도중 후반 막판 교체 출전한 신영록이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쓰러져 한동안 의식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팀 내부적으로도 큰 기대를 가졌고, 국가대표 출신인 신영록이었기에 그가 쓰러진 것에 대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여기에다 K리그 판을 뒤엎은 승부조작 사태에 중앙수비수 홍정호의 연루 의혹으로 또 한 번 폭풍이 몰아닥쳤습니다. 제주의 간판이자 국가대표 선수인 홍정호에 대한 의혹은 제주 분위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다양한 악재들 때문에 분위기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7월 이후 제주는 힘을 잃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6강 싸움 했던 '박경훈 제주'

그래도 제주 박경훈 감독은 끝까지 '긍정의 힘'을 믿었습니다. 온갖 악재에도 감독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고, 선수들을 독려하는데 힘을 다 했습니다. 그런 감독의 바람이 잘 통했는지 제주는 어려운 시기에도 마지막까지 6강행 티켓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쓰러졌던 신영록은 기적처럼 일어나 밝은 미소를 되찾고 제주를 다시 찾았습니다. 신영록이 제주를 찾아 경기를 지켜본 그날, 제주는 인천에 2-1 승리를 거두고 모처럼 승리를 거두며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비록 최종전에서 수원에 져 9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막판까지 제주는 충분히 최선을 다 했고 '아름다운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박경훈 감독이 있었습니다. 박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너무 아쉬움이 많은 한 해였고 원하는 성적은 못 얻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독으로서 많이 배웠다”면서 내년 팀 리빌딩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각오를 보였습니다.

냉온탕 오갔던 2년, 내년에는 도약하기를

내년 제주는 아주 중요한 한 시즌을 보내야 합니다. 팀의 생존이 걸린 문제, 바로 승강제가 실시되는 첫 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게 흔들릴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주 감독 2년 동안 나름대로 색깔 있는 지도 철학으로 팀의 중심 역할을 제대로 선보인 박경훈 감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임 첫 해 2위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두 번째 해에 6강 실패, 연속적인 불운으로 힘들어했던 박 감독. 그래도 "신영록이 다시 살아났고, 홍정호가 다시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던 그에게 내년 한 시즌은 조금이나마 올해 아쉬웠던 것을 보상받는 한 시즌이 될 지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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