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채윤 칼럼] 우리 사회는 어떻게 사건을 기억할까.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연달아 보도되고, 이에 분노한 대중을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일반화되며 우리 사회의 온·오프라인 경계가 희미해졌다. 시간을 맞춰 시청하던 뉴스 방송이나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접하던 사건들 역시 24시간, 7일, 365일 개인의 일상과 밀착되어버린 요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기억하고, 반응하고 있을까.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유명 배구선수들의 학교 폭력에 대한 폭로가 올라왔다. 이후 이어진 추가 피해 사실과 가해자 가족의 부적절한 대응이 후속 보도되며 대중은 더욱 분노했다. 현재 해당 가해자들에 대한 추가 폭로가 이어지며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동 사건이 폭로되고 그것이 언론 보도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대중이 어떻게 사건을 기억하는지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다. 대중이 사건을 기억하는 법은 언론이 기억시키고자 하는 방법, 즉 언론이 사건을 기억하고 회자하는 방법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이었다.

인분 교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당신이 기억하는 언론 보도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분 교수 사건이라는 사건명처럼 제자에게 인분을 먹였다는 자극적인 피해 상황만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왜 피해자가 가해자의 말도 안 되는 가혹행위를 감내해야 했는지, 어떤 식으로 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상승했는지, 왜 주변의 다른 제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가혹행위에 가담했는지, 그리고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오로지 인분 교수, 인분을 먹인 가혹행위와 같이 언론이 전시한 폭력의 일부만을 기억한다. 사건 이후 검찰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대학 내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사건은 자극적으로 전시된 그 피해의 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건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동안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충분히 여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언론이 사건의 극단적인 폭력만을 전시하고, 가해자 개인의 어떤 도덕적, 인격적 문제를 강조하는 방식은 대중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하고 지향점에 대한 사유할 기회를 박탈한다. 사건 보도는 가해자에 대한 대중의 분노만을 자극하는 경우가 다수고, 분노한 여론을 전부로 이해하는 정책결정권자들이 매 사건마다 수십 개의 개정 법안을 상정하고, 특설기구를 설립하는 등 임시방편에 가까운 대응책을 앞다투어 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폭력이 전시되며, 가해자에 대한 감정적 비난의 근거를 언론이 제시함으로써 가해자들은 마치 “예외적이고, 평소에도 문제가 많았던, 나쁜 한 개인”으로 우리와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로서 문제에서 유리화된다. 또한 대중 역시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예외적이고 특별한 누군가로서 심리적 거리감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유리화된 가해자가 공동체에서 축출되고 문제가 해결된 듯 대중의 관심이 휘발될 쯤,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그 자리를 오롯이 메운다. 이렇게 피해는 반복되지만 언론은 마치 또 다른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대중이 기억하도록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지,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언론의 기억법은 양날의 검과 같다. 언론은 대중이 사건을 기억하고, 우리 사회가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원인을 고찰할 수 있는 사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단순히 자극적으로 폭력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와 사건의 맥락과 본질을 보도하고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은 오롯이 언론의 몫이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대중에게 어떤 기억법을 말하고 있는가.

* 김채윤 서울대학교 전문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94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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