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일단은 누구나 예상한 대로다. 여당의 서울시장 재보선 후보로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이른바 ‘제3지대’ 후보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선출된 것이다. 역전을 기대했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에게는 아쉬운 결과겠지만 지지자 입장에서 ‘본선 경쟁력’을 고려하면 달리 선택지가 없는 승부였다.

두 승자들은 단일화 과정에서 별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시종일관 수직정원 등 개발 이슈와 ‘쥐어짜는 주사기’로 대표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시절 업적을 강조했다. 부동산 등 개발 요구에 호응하면서 장관 출신이라는 유능함을 어필한 것인데, 이게 서울시장으로서의 어떤 비전과 연결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대로 나온 우상호 의원도 마찬가지였는데, 과거 이력을 들어 자신을 민주세력의 적자이며 서민의 편이라고 주장할 뿐 친서민적인 서울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복안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안철수 대표는 그나마 이런 것조차 없었다. 보수언론 등에 의해 매일 되풀이되는 정권 반대 논리를 그대로 답습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퀴어퍼레이드 등 소수자 이슈를 쟁점화 하려 했지만 애초 의도와 달리 이는 안철수 대표가 보수 유권자층에 자신의 보수성을 어필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일부 언론은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의 역할 등을 들어 금태섭 전 의원이 “잃은 게 없다”고 평했는데,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는 사람이 이것에 가장 소극적인 정치세력에 구애해야만 하는 이유를 지지자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할 책임이 생겼다고 본다.

아무튼, 한 마디로 서울시장 재보선은 서울의 문제라기보다는 국정안정이냐 정권심판이냐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후보의 태도를 볼 때 앞으로도 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은희, 나경원, 오세훈 서울시장 경선후보가 1일 서울 중구 TV조선에서 열린 4인 비전합동토론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유력 후보들이 결정됐지만 아직 ‘단일화’를 향한 대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야권단일화와 여권단일화 일정이 각각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관심거리는 단연 야권 쪽이다. 국민의힘 후보 선출은 4일로 예정돼 있는데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중 마지막에 웃는 자가 누구일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애초 오세훈 전 시장은 출마하겠다는 건지 불출마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조건부 출마 언급과 “V는 VIP”라는 둥 희화화된 논란으로 지지층 내에 경쟁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 특히 중도층의 거부감이 여론조사 결과 등으로 부각되자 힘의 균형은 복원됐다.

오세훈 전 시장은 나경원 전 의원이 될 경우 안철수 대표와 단일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것도 지지층 입장에선 생각해볼만한 대목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긴 공백기 때문인지 다소 자신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는데 일반적인 선거 국면이라면 이게 단점이 됐겠지만 ‘단일화’란 맥락에선 오히려 장점이 되고 있다. 대권을 노리는 오세훈 전 시장이 마지막까지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도 상대적으로 매끄러울 거라는 식이다.

선거공학으로 보면 단일화를 안 할 수 없는 선거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안철수 대표의 성향과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폐쇄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국민의힘 지지층의 상태 때문에 야권단일화 성사 여부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안철수 대표가 여론조사상 유리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데, 국민의힘 입장에서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에 자당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건 우려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 비대위의 성과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이후 정계개편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쏠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까지 감안해서 국민의힘에서 나오는 단일화 구상을 모아보면 플랜A부터 C까지 경우의 수가 보인다. 플랜A는 누가 됐든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되는 것이다. 단일화에 국한해서 보자면 이게 국민의힘으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플랜B는 단일 후보인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을 하거나 양당이 통합해 ‘기호2번’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안철수 대표는 이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플랜C는 안철수 대표가 ‘기호4번’으로 선거를 치르되 선거 이후 통합을 약속하는 걸로 국민의힘 지지층에 호소하는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기호4번’ 후보로 나가면 선거운동을 도와줄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이 메시지를 뒤집어 보면 결국 이게 마지노선이란 얘기다.

문제는 경쟁력을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힘에 유리한 순서가 곧 불리한 순서라는 점이다. 세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마지막 경우다. 선거 후 통합론에 대해 안철수 대표는 중도층 득표력이란 측면에서 일정분을 포기하는 결단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입장에선 당을 안철수 대표에게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되고 만다. ‘기호 2번’ 선거는 안철수 대표도 어쨌든 공당의 대표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 시나리오는 이를 고집하면서 오히려 단일화 협상이 깨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국민의힘 입장에선 안철수 대표에게 끌려가는 그림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이 문제는 나경원, 오세훈 두 후보가 양강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경선이 시작된 때부터, 더 나아가서는 김종인 비대위가 당을 무너뜨리고 다시 재창조하는 수준의 혁신을 밀어 붙일 수 없는 조건이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 논의가 이 조건을 바꿀 수 있을까? 김종인 비대위가 이 세력이 보여줄 수 있는 사실상의 최대치였다는 점으로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평가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쉽지 않다. 서울시장 재보선처럼 유리한 국면에서도 이러니 정권교체는 요원하다.

이에 비하면 여권단일화의 쟁점은 열린민주당과의 통합 등 논란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해 보인다. 이미 뉴스메이커 이상의 역할은 없을 듯 싶다. 다만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이걸로 끝은 아니다. 당내 강경파가 대통령의 의중을 공공연히 거스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및 열린민주당 통합이나 김진애 후보의 ‘의원직 사퇴’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의원직 승계가 정국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후보 선출 결과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몇몇 사건이 서로 교차한 결과는 재보선 이후 정국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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