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수많은 이들이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오고 있다. 미래가 아름답고 환상적이라면 과거로 오는 것은 일종의 여행이나 치기 어린 관심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에는 절망 외에는 없다. 전쟁으로 파탄 난 세상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에서 과거로 건너오는 이들은 피난민과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무엇하나 정상적일 수 없는 미래에 더는 희망을 걸 수 없는 이들이 역설적으로 과거로 돌아와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이니 말이다.

이루지 못한 소망을 키우기 위해 오는 이들도 있지만, 태술을 제거하기 위해 특별하게 파견된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왜 태술을 죽이려 하는지 이유도 드러났다. 그건 그들이 미래에서 과거로 올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을 태술이 발명했기 때문이다.

태술이 부산 컨퍼런스에 참석하려 했던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며칠 동안 겪었던 기이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죽었던 형이 사실은 죽지 않았다는 것과 하늘에서 떨어진 형과 그의 물건을 통해 미래를 봤다는 점이다.

JTBC 10주년 특별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

미래에서 온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실현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컨퍼런스에서 보여준 실증은 모두를 경악하게 할 정도였다. 각설탕을 가지고 공간을 이동하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입자로 변신해 공간을 이동해 태술이 들고 있는 머그잔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마술과 다르지 않았다.

'고분자화합물의 양자 전송을 통한 위상이동'이라는 방법으로 물건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나아가 시간 이동도 가능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기술은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져야 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오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실제 그런 기술이 발명되었다는 의미이다.

행사장에는 미래에서 온 저격수들도 존재했다. 행사가 열리기 전 이들의 모습은 섬뜩하게 다가왔다. 마치 외계인의 모습으로 등장한 그들은 엄청난 힘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인간인지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저격수가 노리는 단 하나는 바로 태술이다. 태술을 제거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태술을 제거하면 미래도 바뀐다. 하지만 이런 저격수와 태술을 구하려는 서해의 행동은 상충한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태술을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들이 모두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이다.

JTBC 10주년 특별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

서해가 무리해서 부산 행사장에 온 것은 태술을 구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만남이 처음인지 알 수는 없다. 리셋되는 기억과 반복되는 만남들 사이에 이 과정이 억겁의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위기 상황에서 서해는 태술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활극을 보이고, 두려움에 떠는 태술의 모습은 의외로 다가오기도 했다. 컨퍼런스 장소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어설픈 CG 장면은 옥에 티였다. 그리고 그렇게 탈출한 그들 앞에 등장한 이들은 아시아마트였다.

불법 브로커인 이들은 서해와 태술이 탈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속국과 유사하게 그들을 추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시아마트 박 사장에 잡혀 그들의 본거지로 옮겨진 서해와 태술은 티격태격하기에 여념이 없다.

박 사장을 통해 태술은 정말 미래에서 과거로 사람이 옮겨오는 과정을 보게 된다. 좌표를 찾아 미래에서 사람들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의 가방을 빼앗는 것이 박 사장이 하는 사업이다. 귀중품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쓸데없는 것들이 가득하기도 하다.

JTBC 10주년 특별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

태술은 자신이 구현한 기술의 확장형이자, 미래형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봤다. 실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사람이 등장했다. 각설탕이 분해되어 공간을 이동해 자신이 들고 있는 머그잔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그게 각설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다양한 차원의 공간이 존재하고 이를 오가는 기술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태술은 깨닫게 되었다.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왜 이 시점’이란 그 시간의 가치가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점은 <시지프스>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티 유니버스'라는 개념이 영화에 도입되며 다양한 형태의 세계관이 그려졌다. <시지프스> 역시 그런 세계관에 신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무한대로 거대한 돌을 산 위로 올리는 형벌이 드라마 속에서는 반복적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가 없는 길을 영원히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과거인 현재가 변하면 미래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가져가려는 서로 다른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전쟁으로 초토화가 된 미래가 원하는 과거는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현명하게 나올지 궁금하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