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목적은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1등보다 아름다운 2등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저 아름다운 말일 뿐이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도 있다지만, 금보다 은이 값 나가는 현실은 없다. 그것이 스포츠다. 승부의 세계다. 가끔 2등을 기억하지 않는 '승자독식'의 사회를 탓하는 목소리가 스포츠를 질타하긴 하지만 솔직히 뭘 어쩌란 말인가. 스포츠는 정치·사회·경제가 아니다. 가치의 무대가 아니다. 스포츠만은 오직 목적의, 목적에 의한, 목적을 위한 무대이다. 스포츠의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승부를 가르는 것에 있다.

마라톤은 꽃이다

올림픽의 고전적 슬로건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 고전적 슬로건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올림픽에서 겨뤄지는 28개 종목(2004 아테네 올림픽 기준) 전체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렇다. 올림픽의 고전적 슬로건은 육상을 설명하는 슬로건이다. 축구, 야구, 농구 등 세계화된 첨단의 종목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올림픽의 꽃은 몸의 원초적 순수성에 가장 가까운 육상이다. 그리고 육상의 꽃은 누가 뭐래도 마라톤이다.

물론, 여전히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해결되지 못한 인류학적 질문처럼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을 두고 육상의 진정한 꽃이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입장이 갈리기는 한다. 그러나 100m 달리기와 마라톤은 차원이 다르다. 100m 달리기는 오직 '더 빨리'의 관점으로만 진행되는 운동이다. 화려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에 비해 마라톤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모두를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남김없이 충족시킨다. 마라톤은 수백 명의 선수와 몸을 부대끼며 빨리(100m 평균 17초) 오랜 거리(42.195km)를 뛰어야 하는 운동이다.

▲ 동아일보 3월 17일자
그리고 마라톤이 더욱 각별한 것은 바로 우리의 종목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100m 달리기는 1979년의 어느 날에 정지해 있다. 서말구 선수가 79년에 세운 10초 34의 기록은 3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라톤은 아시다시피 세계 정상의 수준이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올림픽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환희는 마라톤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톤은 꽃이다.

꽃 중의 꽃, 황영조와 이봉주

그러나 92년부터 오늘까지 한국 마라톤을 지배하는 이름은 단출하다. 고유명사 두 개이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이다. 황영조 다음 이봉주 순으로 기억되지만 황영조와 이봉주는 1970년생 동갑이다. 황영조 감독과 이봉주 선수는 둘 다 올해 서른아홉 살이다.

선수 이봉주는 여전히 한국 마라톤 부동의 1인자이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호명하는 이름이다. 그의 전성기는 96년이었다. 이봉주는 동아국제마라톤 2위(3월), 애틀랜타 올림픽 2위(7월), 후쿠오카 마라톤 대회 1위(12월)를 차지하며 그 해 세계랭킹 1위를 기록했었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봉주는 여전히 뛰고 있다. 이봉주의 달리기는 시간의 법칙을 소멸시키는 위대한 발걸음이다.

낯설고 위태로운 이름, 김이용

베이징올림픽의 전초전 성격으로 치러진 '2008 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전후해 모든 미디어는 이봉주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미디어의 일방적 응원과는 달리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2시간12분27초의 부진한 기록으로 8위에 그쳤다. 이번 대회 성적표에서 우선 눈에 뛴 것은 1위부터 6위를 휩쓴 케냐 선수들이었다. '2008 서울국제마라톤대회'는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우악스럽지만 날렵한 뒷태를 지닌 흑인 선수들의 압도적 신체가 마라톤 역시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한 대회였다. 그런데 압도적 6명과 위대한 이봉주 사이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8위에 머문 이봉주의 부진 바로 앞에 위태로워 보이는 7위 김이용이 있었다.

김이용을 기억하는가? 1999년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당시 국내 2위 기록이었던 2시간 7분 49초를 뛰어 황영조, 이봉주를 잇는 차세대 영웅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스포츠 홀릭 정도 되어야만 기억할 수 는 이름이 되었다. 스타가 되기 이전에 사라진 무명의 이름이다. 이봉주의 외로운 레이스를 찬양하는 동안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김이용 역시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70년생 이봉주를 73년생 김이용이 드디어 이겼다.

누군가에게 마라톤은 운동이 아니라 운도(運道)

김이용,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웠다. 김이용이 올림픽에 나가는 건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12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김이용의 기사를 찾아보며 감격은 경이로 바뀌었다. 김이용은 자신에게 마라톤은 ‘운동이 아니라 운도(運道)’라고 했다. 도(道)는 통하고 이치를 알게 되어 깊이 깨닫는다는 의미이다.

흔히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인간 기관차'로 불리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의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에밀 자토페크는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마라톤이 '인간에 관한 종합학문'이라는 논문도 있다고 한다. 힘들고, 지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타협하고, 비굴하고 비루하여 포기하고 싶지만 끝내 가야하는 인생처럼 마라톤은 터질듯 한 가슴의 걸으라는 유혹에 맞서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해 매초 근육을 밀어 나가는 2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 행위이다. 친숙해지지 않는 몸짓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는 배반의 경기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항상 자신과의 대화와 자신만의 격려가 존재하는 투쟁이다.

김이용 선수는 이 모든 어려움 그리고 이마저도 압도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1인자의 그림자 안에서 서른여섯이 되도록 홀로 달려 왔다. 그리고 이제 도(道)했단다. 마라톤을 통해 인생의 이치를 알게 되어 깊이 깨달았단다.

희망의 증거를 응원한다!

양준혁, 박명수, 김구라 등 2인자가 더 각광받는 시대라지만 그것은 여전히 이승엽, 유재석, 강호동이라는 빛나는 1인자가 존재한다는 역설일 뿐이다. 그래서 염원해 본다. 뒤늦게 김이용을 응원한다. 김이용 선수여, 위대한 1인자를 이기는 아름다운 1인자가 되어 달라! 끝내 승리하여 빛조차 피해가는 비루한 인생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 달라!

학교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을 휴학하고 몸을 더듬어보니 라이타 한 개밖에 없더라는 싸구려 열정에 여전히 감격하는 청년 백수. 을용타에 열광하는 청년 백수들이여,라이타(right-打)하라! 오른쪽을 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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