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야권 지자체장을 사찰하고 언론을 동원한 여론전을 주문했다는 문건이 보도됐다.

18일 한국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천 남동구청장이었던 배진교 정의당 의원에 대한 국정원 사찰문건 원본을 입수해 보도했다. 해당 사찰 문건의 제목은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이다. 2011년 9월 15일 작성됐다. 사찰 대상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과 민주노동당(정의당 전신) 소속 광역 지자체장 8명, 기초 지자체장 24명이다.

18일 한국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천 남동구청장이었던 배진교 정의당 의원에 대한 국정원 사찰문건 원본을 입수해 보도했다.

보도된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야권 지자체장들이 ▲‘종북ㆍ좌파’ 인물을 주요 보직에 중용하고 ▲'좌파강사'를 동원한 강연회를 열고 ▲보수단체 지원을 축소했다며 "적극 제어가 필요하다"고 총평했다. 국정원은 또 야권 지자체장들이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과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무상급식 등 포퓰리즘을 일삼는다고 적시했다.

배진교 당시 남동구청장에 대해 국정원은 "'부모스쿨'(150명)을 운영하며 강사진에 전교조·민노총 출신을 배치했다"고 기술했다. 국정원은 배 의원이 노조 활동가 출신을 구청 자문위원으로 임명한 데 대해 "종북 인물을 기용했다"고 평가했다. 국정원은 배 의원이 전교조 출신을 강사로 기용해 강좌를 연 사실을 적시하며 "지역사회 이념 오염 조장", "종북·좌파 논리 전파 및 정부정책 비판 여론 조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국정원이 일개 구(區)의 주민 상대 강연 행사까지 챙긴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정원은 이 같은 사찰내용을 바탕으로 정부부처와 언론 등을 동원한 '압박 계획'을 세웠다. 국정원은 "당정이 가용 수단을 총동원, 야권 지자체장들의 국익·정책 엇박자 행보를 적극 견제·차단함으로써 국정 결실기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행정안전부, 감사원, 기획재정부 등에 '압박 계획'을 할당했다.

행안부에 대해 지자체에 주는 교부세 감액과 지방채 발행 중단 등의 불이익을 주라고 지시하면서 국정에 협조하는 지자체에는 인센티브를 줘 태도변화를 적극 유인하라고 했다. 감사원에는 기관운영감사 등을 통해 종북단체의 사회단체 보조금 부당사용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했고, 기재부에는 "예산삭감 등 실질적인 제어장치를 가동"하라고 했다.

국정원은 언론을 동원한 여론전을 주문했다. 국정원은 "건전 언론 및 보수단체와 협조, 규탄성명 발표, 항의집회 개최 등으로 지역 내 비판여론 조성을 통해 지자체장의 독단적 행보를 저지하라"고 했다. 2019년 12월 명진스님이 국정원으로부터 돌려받은 문건들에서도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사찰과 언론공작 계획이 드러난 바 있다. '봉은사 주요 현황', '명진의 각종 추문', '명진의 종북 발언 및 행태', '봉은사 내 명진 지지세력 분포 및 시주금 규모', '사설암자 소유 의혹',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 등 비리 수사로 조기퇴출' 등의 문건에서 국정원은 명진스님을 봉은사 주지직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보수 언론과 인터넷 여론을 동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일보는 "이런 압박 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해당 문건에 사찰 대상으로 적시된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 등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상태"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국정원이 생산한 14쪽 분량의 문건엔 이명박 정부가 야당을 어떻게 규정하고 다루려 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며 "'사찰이라고 하지만, 동향 파악 수준 아니었겠냐'는 정치권 일각의 추측을 무색하게 한다"고 풀이했다.

지난 8일 SBS는 국정원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18대 여야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 대한 사찰을 벌였고, 그 문건이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문건의 존재를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며 문건이 만들어진 시점을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로 특정했다. 고 권 전 민정수석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재임했고, 당시 국정원장은 원세훈 씨다. 이 관계자는 문건의 존재를 여야에 모두 알렸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국정원 사찰문건은 이 시기 직후 작성된 것으로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지속된 사찰기조를 엿볼 수 있다.

보수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번 국정원 사찰문건 논란을 '선거용 정치공세'로 규정짓고 동향 파악 수준의 문건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역임한 이재오 전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의)일상적인 업무 보고"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한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선거를 위한 정보기관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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