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전북 현대가 또 하나의 K리그 역사를 썼습니다. 2009년 창단 첫 우승에 이어 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거둔 것입니다.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라는 모토 아래 공격과 수비, 그리고 기존 선수와 이적 선수의 화려한 조화를 이룬 전북은 K리그 16개 팀 가운데 가장 강한 전력을 갖고 흔들림 없는 질주를 한 끝에 마침내 2번째 우승을 이뤘습니다.

사실 전북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강팀으로 분류될 정도의 전력을 갖춘 팀이 아니었습니다. 2006 AFC 챔피언스리그에 우승하고, FA컵에서도 몇 차례 우승한 경력은 있지만 정작 리그에서는 6강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K리그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갖춘 팀으로 떠오르고, 얼마 전 AFC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을 자랑하던 'K리그 킬러'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마저 원정에서 3-2로 승리를 거둘 정도로 위협적인 팀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뭐니뭐니해도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의 공이 컸습니다.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뚜렷한 팀 컬러를 만들어내면서 철저한 조직 관리를 통해 이뤄낸 '최강희식 축구'는 이제 그 뿌리가 완전하게 내려지면서 K리그 전체를 열광시키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최강희 감독을 키운 '3년 전 위기'

▲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 ⓒ연합뉴스
국가대표팀 코치를 거쳐 지난 2005년 전북 현대를 맡은 최강희 감독은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첫 무대, 전북 현대에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을 갖고 햇수로 7년째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팀 운영, 뚜렷한 철학을 갖고 선수들을 '밀당'하면서 정상급 선수로 키우는 능력 등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지도력으로 '명장'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가 팀을 맡은 뒤 전북은 2005년 FA컵을 시작으로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이어 2009년 마침내 K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리며 명문구단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능력도 좋고, 푸근한 인상이 매력적인 그에게 전북, K리그 팬들은 '봉동이장', '강희대제'라는 별칭을 붙이며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최강희 감독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2005년 부임 이후 3년간 한 번도 리그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2007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일본 우라와 레즈에게 패해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세대교체 리빌딩 작업이 진행되기는 했어도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기대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습니다. 이는 최강희 체제 4년차인 2008 시즌에도 지속됐고, 그 해 시즌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팬들은 4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해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최 감독을 맹비난했습니다.

이런 팬들의 반응을 최강희 감독은 모를 리 없었습니다. 다른 감독에 비해 인터넷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만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 비난 여론이 들끓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분명 상당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갈 길이 있다 해도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답해야 하기에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통상 이런 경우, 언론을 통해 '지켜봐달라'고 하고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면 '책임을 통감한다'며 거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심을 담은 '마지막 호소', "꿈을 이루고 싶다"

▲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지난 2008년 9월, 팬들의 비판, 비난에 대해 직접 구단 게시판에 쓴 장문의 편지. 최 감독이 이 편지를 쓴 이후 전북은 거짓말같이 모든 꿈을 이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진심을 다해 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2008년 9월, 전북 현대 게시판-마니아토론장에 '여러분들께 여러 시즌 스트레스 잔뜩 드리고 있는 최감독입니다'로 시작된 장문의 편지는 성적 부진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팬들의 비판, 질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독의 솔직한 심경과 고민을 언론 등 제3자가 아닌 직접적으로 털어놓는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호소였습니다. (최강희 감독 편지 페이지 바로 가기 )

성적 부진에 대해 최 감독은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과 원인은 나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고, 모든 비난은 다 달게 받겠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부진해도 내부적으로 젊어지고 가능성 있는 팀으로서 달라진 만큼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했습니다. 편지 일부분 가운데서는 최 감독의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함께 3년이 지난 지금 보면 '천기누설'을 한 것 같은 '깜짝 놀랄 만한' 내용도 있습니다.

"전북은 정말 팀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구나
가끔은 지나치기도 하지만 그게 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걸 알았으니까요 ㅎㅎㅎ
울 팬들은 정말로 팀을 아끼고 행복해 하는구나
글구 욕은 정말 잘하는구나 ㅋㅋ
저 그걸 알고부터 정말 팀에 애정이 무지 마니 생겼습니다^^
팬들의 힘은 감독에게 무한한 힘을 주니까요
이젠 봉동 표지판만 봐도 행복해하는 그런 전북 인간이 되었지요
(중략)
어떻게 떠나든 전북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남아있을겁니다
분명 좋은 추억으로
왜냐구요?
제가 감독으로 처음 일한곳이구요
한때는 팬들의 과분한 사랑을 마음껏 받아본 팀이었으니까요
그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제 모든거 해결하고 클럽하우스 하나 남았네요
내 임기동안 도전 할수 있는 유일한 숙제 "클럽하우스"
저도 가끔 꿈을 꿉니다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
우리팬들의 영원한 숙제 리그우승도 꿈꾸고
다시한번 아챔 도전을해서 역사를 다시한번 써보자
2006년을 재현해보자
그런꿈을 꿉니다
허세는 아니고 우리만의 노하우가 있으니까.......ㅜㅜ ㅜ
(중략)
진정한 전북의팬이라면 긴 호흡으로 팀의 미래를 기다려줄줄 아는것도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의 의견 모두다 소중하고 다르고 같을순 없겠지요
제가 있는동안 모든분들의 의견 소중하게 간직하고 팀사랑으로 알겠습니다"

이 편지가 올라온 뒤 전북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감독님을 응원하겠다", "진심이 느껴진다", "끝까지 버텨 달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강희 감독의 솔직한 심정을 이해한 팬들은 냉랭했던 반응을 풀었고, 끝까지 최 감독을 지지를 했습니다. 최 감독은 힘을 냈고 선수들 역시 힘을 내며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북 현대가 K리그 역사를 새로 쓰는 시작점과도 같았습니다.

거짓말 같은 꿈 실현, 이제 더 큰 꿈을 기대한다

이 편지를 쓴 직후 전북은 후반기 대반격에 성공하며 그토록 바랐던 6강 진입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2009년 편지에서 거론했던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을 당당히 이뤄냈습니다. 2010년에도 3위에 올라 2년 연속 상위권에 올랐던 전북은 올해 또 한 번 정규리그 우승에 성공하며 K리그 역대 최강팀 반열에 우뚝 섰습니다. 또한 '다시 한 번 아챔 도전을 해서 역사를 다시 한 번 써보자'는 꿈도 이번 2011 시즌에 어느 정도 이뤄내며 4강 2차전과 결승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팀의 위상도 높아졌고, 경기장을 찾는 관중도 많아졌습니다. 그에 걸맞게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도 이어졌습니다. 최 감독의 '숙원 사업'과 같았던 클럽하우스도 짓고, 더블 스쿼드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전력이 좋아지는 등 내부 환경이 탄탄해졌습니다. 거짓말 같이 편지에 쓰인 모든 꿈들이 거의 이뤄진 것입니다. 이제는 AFC 챔피언스리그, K리그 최종 우승이라는 사상 첫 한 시즌 '더블(두 개 대회 우승)'을 이루는 꿈을 기대하고 있지만 어쩌면 FIFA 클럽월드컵 우승 같은 '세계를 지향하는' 더 큰 꿈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강희 감독의 진심을 담은 열정과 애정, 그 감독을 따라 함께 즐기면서 팀을 발전시킨 선수들, 그리고 그 진심에 감동해 마지막까지 열렬히 지지한 팬들이 골고루 조화를 이뤄 오늘날 최강팀으로 떠오른 전북 현대의 기적. 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성장을 꿈꾸는 걸 보면 '전북셀로나'라는 별칭처럼 진짜 FC 바르셀로나급의 팀을 기대해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편지에서 최 감독은 "제가 마술은 못 합니다"라고 했지만 이미 '최강희 매직'은 이뤄졌고, 더 큰 '매직'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진심을 담은 편지에서 시작된 전북의 기적과 꿈, 그리고 더 높은 비상을 향한 도전, 이와 더불어 최강희 감독이 이뤄낼 다양한 '매직'들은 K리그에 새로운 희망 스토리로 팬들을 흥미롭게 만들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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