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핸드볼을 직접 봤던 게 약 3년 전입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볼 때마다 언제나 감동했던 핸드볼을 눈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관련 글). 취재 반, 관전 반으로 핸드볼을 원 없이 봤고, 선수들이 보여준 다이내믹한 플레이와 투지 넘치는 모습에 많이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당시 안타까웠던 것은 연습할 공간이 없어 복도나 경기장 주변 공터에서 몸을 풀고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경기가 하루에 한 경기씩 치러지지 않고, 여러 경기가 순차적으로 치러지다보니 생긴 일이었습니다. 미리 도착했어도 마땅히 몸을 풀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선수들은 복도에서 몸을 풀고 일부는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핸드볼 전용 구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꾸준하게 제기돼 왔던 핸드볼 전용 구장 건립은 정부, 기업의 무관심, 비인기종목 설움 등의 이유로 20년 넘게 답보 상태였습니다. 인기도 없고, 마땅히 경기를 치를 경기장이 없다보니 매년 경기장소, 일정이 바뀌고 전국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인프라 구축의 첫발을 내딛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핸드볼 전용 구장 건립 꿈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데볼의 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23년 만에 그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23일, 서울올림픽공원 내에 핸드볼 전용 경기장이 'SK 올림픽핸드볼경기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문을 여는 것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국민적인 관심을 등에 업은 데 이어 대기업 SK 회장인 최태원 씨가 핸드볼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모든 것이 급물살을 탔고, 지난해 5월 착공해서 1년 5개월 만에 완공했습니다. 핸드볼협회는 23일 준공식을 갖고 '핸드볼인의 날'로 지정해 다채로운 행사와 이벤트와 더불어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을 가져 곧바로 팬들에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2013년 프로화를 추진하고 있는 핸드볼의 발전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전용 경기장 완공에 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시설, 의미 있는 공간 - 프로스포츠도 본받을 만하다

기존 올림픽펜싱경기장을 리모델링하는 형태로 건립된 핸드볼 전용 경기장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뤄져 총 5000여 석 규모의 다목적 체육관입니다. 외형이나 내부 시설 모두 완전히 개조해 만들었으니 당연히 시설 수준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핸드볼 선수 그리고 팬, 나아가 지금까지 한국 핸드볼이 있기까지 노력한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 시설이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짜고 계획해 만들어져 '디테일한 경기장'이라는 별칭을 붙여줄 만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잘 가꿔 나간다면 충분히 다른 프로스포츠에도 귀감이 될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먼저 이 경기장은 본경기장과 보조경기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경기장 하나에 코트 하나만 있는 일반 체육관과는 다릅니다. 경기장 내에 두 개 경기장이 있으니 적어도 경기를 치르기 위해 선수들이 경기장 복도에서 연습할 일은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스레 선수들 입장에서도 마음 놓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또한 이 경기장은 철저히 팬을 지향하는 '친관중적' 경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핸드볼에 최적화된 시야 마련, 관람석을 위해 일부러 유럽 핸드볼 선진국을 찾아가 벤치마킹을 하고, 전광판, 조명, 음향 등도 최신식으로 마련하는 등 핸드볼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핸드볼 전용 경기장인 만큼 모든 것이 핸드볼에 맞춰져 최적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핸드볼에 그저 관심 있던 사람들을 팬으로 만드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신식 시설인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경기장이 대기업의 엄청난 기부에 의해 건립된 경기장 첫 사례라는 점이 더 흥미를 끕니다. 최태원 회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여자핸드볼이 동메달을 따낸 뒤 협회장직에 올라 핸드볼인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핸드볼 전용 경기장 건립이 시급하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협회장직을 본격 수행하면서도 가장 신경을 써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존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을 리모델링하는 형식으로 들어간 공사비 434억 원을 통째로 SK가 핸드볼협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됐고, 이에 따라 경기장 이름도 SK 올림픽핸드볼경기장으로 명명되면서 기업 이름이 들어간 국내 첫 경기장으로 남게 됐습니다.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기업이 자사 기업명이나 제품명을 경기장 이름에 붙여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처럼 이번 핸드볼 전용 경기장 사례를 통해 국내 스포츠에도 기업과 경기장이 만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또한 이 경기장에는 핸드볼 명예의 전당도 마련돼 한국 구기 스포츠 가운데 국제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핸드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경기장 안에 해당 종목 또는 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설은 유럽, 미국 등 스포츠 선진국에 이미 보편화돼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프로야구, 프로축구조차 경기장 내에 팀 역사를 돌아보는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핸드볼이 협회를 중심으로 잘 가꿔 나간다면 충분히 다른 스포츠, 한국 체육계 전반에도 옛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꿔가는 사업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날 핸드볼이 있기까지 노력한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문화 전반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설이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면이 많습니다.

핸드볼의 새로운 희망 터전 돼라

모든 면면이 세심하게 갖춰진 핸드볼 전용 경기장. 그만큼 핸드볼을 사랑하고 열정을 다한 사람들이 합심해 만든 성과였습니다. 그동안 설움만 받으면서도 묵묵히 국제대회에서 큰 성과를 내고 투혼과 감동을 선사했던 이들이었기에 충분히 그들은 이런 경기장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는 이 경기장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제2, 제3의 핸드볼 전용 경기장이 건립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고 꿈을 키우는 핸드볼 선수들이 더 늘어나 진정한 우생순(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핸드볼협회가 내놓은 중장기 비전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이번 경기장 건립은 핸드볼의 진정한 발전을 향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핸드별협회는 이번 런던올림픽 남자핸드볼 예선을 시작으로 국내외 다양한 경기를 치른 뒤, 2013년 세계남자핸드볼선수권을 이곳에서 치러 진정한 '핸드볼 붐'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추진력과 여러 가지 목표 실현들이 한국 핸드볼의 진정한 중흥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핸드볼인들의 의지, 대기업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어 마침내 이뤄낸 숙원 사업, 여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팬들만 잘 갖춰진다면 핸드볼에 더 이상 한데볼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SK 올림픽핸드볼경기장, 한국 핸드볼의 새로운 희망 터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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