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북한 원전건설 추진' 의혹이 대북제재 등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고, 산업통상자원부가 문건을 공개하면서 힘을 잃고 있지만 보수야당·언론은 뚜렷한 근거 없이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언론과 원전전문가들은 북한 원전건설 추진이 '실현 가능하다'는 등 추측성 의혹제기에 앞장서거나, 국민의힘측 '색깔론' 비호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3일 기사 <"당시 원전건설은 금기어, 공무원이 지시없이 했을까">에서 "문건 내용은 공무원 개인의 '단순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선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몇몇 교수들의 해석을 전했다.

이 기사에서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에너지 주무 부처 공무원이 정권의 핵심 에너지 정책인 탈원전과 정반대의 방안을 상부 지시 없이 혼자 자발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이 첫 머리에 있는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지역에 원전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전문가' 말을 빌려 신빙성 의혹을 제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에 "저런 문구는 주로 대외비인 문건에 쓰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정 교수를 '과기부에서 5년여 공직 생활을 한 뒤 정부 전력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월 3일 조선·중앙일보 북한 원전건설 추진방안 관련 기사와 사설

이어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문건에 담긴 방안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지적한다"면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건설 중이던 신한울 3·4호기용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 등을 북한으로 갖고 가 원전을 지을 경우 새로 만드는 것보다 시간·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의 소제목은 "전문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안'"이었다.

정범진 교수와 주한규 교수는 2018년 출범한 '원전수출 국민행동'에 참여한 바 있다. '원전수출 국민행동'은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에 한국형 원전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단체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文 정권이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 北에 넘기자는 발상>에서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한 기 5조원짜리 원전을 북한에 지어주자는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낼 수 있었겠나"라며 "가장 황당한 것은 이 정권이 공사를 중단시킨 신한울 3·4호기 설비들을 북한에 넘겨주자고 한 것이다. 또 완공 후에 생산 전력을 북한에 보내주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내부검토 자료이고, 정부 공식입장도 아니라는 문구가 문건에 등장하지만 조선일보는 '정부차원의 계획 추진' 주장을 별다른 근거없이 기정사실화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사설 <북 원전 의혹 '색깔론'으로 본질 흐리지 말길>에서 "여권 입장에선 4월 재·보선이 코앞인 지금 야당의 공격을 색깔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선거 전략상 그 편이 유리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관련 의혹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까지 색깔론으로만 치부해 버리면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당·정·청 인사들이 "전 정권을 탓하거나 '근거없는 공격'이라며 색깔론으로 뭉개 버린다"면서 "국민은 북한 원전 건설 추진에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게 아니다. 기저엔 끊임없이 도발하는 북한에 아무 대응도 못 해온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나온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이적행위" 발언은 색깔론적 주장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중앙일보는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정부의 무대응'이라는 표현을 덧붙여 색깔론을 강화한 셈이다.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내용 중 (산업통상자원부)

그러나 다른 주요 언론에서는 '북한 원전건설 추진' 의혹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힘을 잃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정부가 북한 원전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해 문제라는 보수야당·언론의 주장이 애초 대북제재 완화·해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 북한 원전건설 지원 사업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오랫동안 북한 비핵화 보상책 중 하나로 얘기되어 왔다는 점, 산업부 문건 공개로 정부 추진계획이 아니었다는 점 등으로 깨질만큼 깨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3일 사설 <야당, 막무가내 북한 원전 논란 중단해야>에서 "국민의힘이 제기한 북한 원전 논란이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소모적 논란과 감정적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고 총평했다. 한국일보는 "애초에 야당이 추측을 근거로 '이적행위'라고 몰아붙인 것은 무리한 색깔론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며 "야당은 무의미한 의혹 제기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국일보는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발전설비 지원을 검토하거나, 이를 정부가 극비리에 추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만한 일"이라며 "검토자료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국민에겐 아무 쓸모가 없는 소모적 논란일 뿐이다. 국민의힘이 구시대적 정치로 선거에서 이기려 하는 것은 오판"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원천 실현 불능 ‘北 원전’, 소모적 색깔 정쟁 멈춰라>에서 "‘북한에 원자력발전소 제공을 추진한다’는 산업부의 아이디어는 원천적으로 실현불가능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체제에 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라며 "그런데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략적인 소모적 색깔론을 확대재생산하는 국민의힘을 보고 있지만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일갈했다.

서울신문은 "산업부 문건에는 '비핵화 내용에 따라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방안 도출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첨부돼 있다"며 "문건은 비핵화 진행을 상정해 전력난을 겪는 북한이 우리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원전 건설에 대비한 산업부 단독의 내부 검토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배치되는 신한울 3·4호기 부활이나 DMZ 원전 건설이란 탁상공론이 포함됐을 수 있다"고 했다.

2일 경향신문은 사설 <'북 원전' 공세 지속하는 야당, 북핵 외교 ABC도 모르나>에서 "원전 건설은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한 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한 뒤에나 이뤄질 수 있다"며 "비핵화와 NPT 가입이 이뤄졌덜도 한국이 미국의 원천기술과 라이선스가 포함된 원전을 북한에 지으려면 북·미 간 원자력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더구나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엄격한 대북 제재를 받고 있다"며 "야당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면 '북핵 외교의 ABC'도 모르는 한심한 정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썼다.

한겨레는 사설 <국민의힘, 근거 없는 '원전 색깔론' 여기서 멈춰야>에서 "사실 대북 원전 제공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이래 북한 비핵화와 남북 경협을 촉진하는 방안으로 줄곧 검토돼왔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살펴보는 건 문제 될 게 없다"며 "정부가 경수로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협의 없이 유엔 제재를 어기고 비밀리에 원전을 지어줄 것이라는 가정도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국민의힘이 이런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 조건을 무시한 채 산업부가 문건을 작성했다가 삭제했다는 이유만으로 색깔론을 펼치는 건 설득력이 없다"며 "정부에 대한 감시·비판은 야당의 중요한 책무이지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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