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문화강국’ 타이틀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달라진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아직 문화강국이라고 하기에는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

소비 현상만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최고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소비는 일상적인 호기심이 만들기도 한다. 그 소비가 무한대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예능 프로그램의 힘은 막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예능에 출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아무리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도, 예능에 한 번 출연한 이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

무엇이든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예능만큼 경쟁력이 높은 분야도 없다. '밈'이 대세가 되고 있는 반면, 기존 방식으로 소비되는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상황까지 온 듯하다. 2시간 정도의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일상이 되면서 백과사전은 실물에서 사라졌다. 단순히 시간을 단축시키는 행위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취득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은 그만큼 더 큰 가능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속도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남길 수밖에 없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시간의 가치가 새롭게 각인되며 영화 한 편 제대로 보기가 어려워지는 시대라면 아쉽다. 여전히 한국의 영화 사랑은 대단하지만, 그에 반해 긴 내용을 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예능은 굳이 서사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느 부분에서 보든 크게 의미가 없다. 그저 보여지는 순간 웃고 소비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예능도 있지만, 이미 성공 사례를 통해 자신들만의 패턴을 만든 예능이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여전히 나영석, 김태호 예능을 넘어설 이들이 보이지 않는 건 결과적으로 퇴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이들의 예능은 사랑받고 성과도 보이고 있지만 새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단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쟁이 어려워진 시장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아직 이들이 최고란 의미는 그만큼 성장이 더디단 의미다.

과거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사과를 하고 다시 큰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드는 창구로 변질된 것도 문제다. 예능에서 온갖 미화를 하고 이를 통해 이제 방송 활동을 해도 상관없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상황은 당혹스럽다.

노골적인 홍보 방송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출연한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일을 홍보하고 미화하는 방송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이니 이제 볼만한 예능이 없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MBC 파일럿 예능 <배달고파? 일단 시켜!>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방식을 차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대중이 좋아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답습만 하는 지상파 예능은 이제 임계치를 향해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대변한다며 거대 배달앱을 홍보하는 듯한 프로그램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어렵다. 유튜버가 기업의 지원을 받고도 광고임을 숨기다 비난을 받았지만, 그런 방식이 이제 지상파 예능에서도 뿌리를 내리려 한다.

많은 이들이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OTT로 향하는 이유는 기존 콘텐츠가 시청자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더는 볼 것이 없는 TV가 아니라 수많은 것들을 담아내는 OTT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월 고정액을 내고 볼 정도로 그 안에 만족할 수 있는 많은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광고주를 위한 방송이나, 관심 없는 연예인들의 가십도, 그들을 위해 찬사를 쏟아내는 모습도 더는 볼 필요가 없다.

2021년 하반기에는 디즈니가 입성한다. 애플TV 역시 한국인이 혹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국내 OTT가 경쟁하기 어려운 규모의 경제가 대중문화, 특히 방송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쟁력이란 이제 단순히 한국 내 다른 방송과의 경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그 대상 또한 넓어지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에 집착하고, 자기 꼬리만 집어삼키는 식의 조삼모사 예능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물론, 새로운 예능에 대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예능으로서 가치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문제는 ‘시청률’이라는, 광고주와 방송사 간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지표에만 집착하는 예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tvN 예능 <윤스테이>, MBC 예능 <빈집살래 in 서울_확장판>

세상은 열려있고,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넷플릭스가 연 세계화는 이제 디즈니 플러스의 입성으로 보다 거세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주하는 순간 도태는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로 회귀하거나 민망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이어가는 예능은 이제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정점에 도달했을까?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정점이라는 것은 하강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단순히 영화만 놓고 봐도 과거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미미하던 시절 다른 아시아 국가는 전성기였었다.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했던 중국의 영화가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긋던 시절도 존재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 대만 영화에 환호하던 때도 있었다. 물론 일본 영화에 대한 찬양은 이들보다 더 깊고 강렬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정점을 찍는 순간 잘못된 판단들은 결과적으로 몰락을 이끈다.

대중문화는 스스로 안주하는 순간 후퇴할 수밖에 없다.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이제 점점 더 커진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는 것처럼 소프트 파워 역시 최고다. 하지만 TV를 보고 있자면 과연 이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현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상황을 보다 길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장 역시 끊임없이 단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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