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한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가 연합뉴스 관리·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 새 이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자 "정치인 내정이 언론개혁이냐"는 언론계의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 공영언론 이사·사장 교체가 줄줄이 예정된 가운데 공영언론 지배구조 개선은 진척이 없고, 낙하산 인사는 그대로라는 비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전 대사에 대한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직 제안 철회를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에 대한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직 제안 철회를 청와대에 촉구했다. (사진=미디어스)

언론노조는 공영언론 이사·사장 선임과 관련한 제도적 개혁을 요구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다.

박성민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은 "이백만씨는 현 정권에서 교황청 대사를 했다"며 "정무직 공무원으로 한 거다. 누가 봐도 정치인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이백만 씨의 자질과 품성이 너무 훌륭해서 그 분은 언론장악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어쩔 건가"라며 "박근혜·이명박 정권 홍보수석을 지낸 사람을 공영언론 이사장에 내려보낸다면 무슨 명분으로 막을 수 있나. 공약을 실현하지 못할 거라면 정치인을 이사장으로 내려보내는 선례는 만들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여당과 야당, 국회의장, 청와대가 지명하는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이사 선임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상의도 없는 깜깜이 추천"이라며 "그리하여 야당에서는 언론장악에 복무한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한 번도 없던 정치인 이사장이 거론되고 있다. 견제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공영언론의 이사·사장 선임제도에 국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온 지 벌써 4년이 지나가는 중"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지켰나. 기자회견에서 공영언론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탄생 이후 제도개혁은 단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 선의가 아닌 제도로 답하라"며 "제발 정치권력은 언론에서 손 떼라. 말로 말고, 태도로 법으로 하라"고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올해 공영언론 인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런 상태라면 이백만이 아니라 더 한 인사들이 줄줄이 낙하산으로 내리 꽂힐 수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싸움을 반복해야 하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는 제도를 만들어 권한을 제한하고, 권리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왔다"고 비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 인사 풀의 한계와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인사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2018년 국가인권위원장 선출과정을 모범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인권위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위원장 후보추천위를 꾸려 선출절차를 밟았다. 밀실에서 이뤄져 온 인권위원 선출 관행을 과감히 철폐한 것으로 이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김 사무처장은 "인권위는 되는데 공영언론은 왜 안 되나"라며 "법률상 KBS 이사 등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부터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든 권한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방통위는 제도개선 논의기구를 구성해 하반기 공영방송 이사선임 절차와 방식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만약 올해에도 또다시 공영언론이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내홍을 겪는다면, 공영언론 제도 자체가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며 "올 상반기가 공영언론을 회생시킬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2020년 12월 24일 연합뉴스TV 방송화면)

한편,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는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이 전 대사의 진흥회 이사장직 선임에 반대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는 이 전 대사와 함께 진흥회 이사장직 유력인사로 거론됐던 조양일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실 고문에 대한 노조의 반대입장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고문은 진흥회 이사장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고문은 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다. 반면 이 전 대사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자격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이사장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전 대사는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차장과 대통령 홍보수석을 역임했다. 2009년 국민참여당 창당에 참여해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지냈고,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 출마했다. 현 정부에서 주교황청 대사로 임명돼 최근까지 활동했다. 그는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일보, 머니투데이, 한국경제TV 등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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