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4년만에 차기 집행부 경선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 노조 집행부는 지원자를 찾지 못해 공석이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1월부터 4차례 걸쳐 신임 위원장 후보를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대의원 대회를 열어 위원장 선임을 기수제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비대위는 차기 노조위원장을 맡아야 하는 기수에게 의견을 구했다. 기수제가 적용되면 자발성은 부족하지만, 후보자 물색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경향신문 노조는 지난 1일부터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한대광 전임 위원장의 임기 종료를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1월 차기 집행부 선거가 치러져 당선자가 나왔다. 하지만 당선자가 취임 직전 개인 사유로 사퇴 의사를 밝혀 집행부 공백 상태다. 비대위는 21일 회의를 갖는 등 차기 위원장 선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겨레 노조위원장 공석은 7개월 째다. 비대위원장은 전임 노조 집행부 사무국장이 맡았다. 매달 위원장 후보를 찾고 있지만 지원자가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 CI

지원자가 없어 발생한 노조 집행부 공백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신문사 세 곳에서 새 집행부를 출범시키지 못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우선, ‘노조 집행부가 필요하지만 나는 못한다’는 기피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조합원은 “기자 경력이 단절되고 미운털 박히는 일을 누가 하고 싶겠냐”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쓴소리만 하고 주변의 미움만 받는 일이라 다들 하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기자로서의 2년간 경력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조합원은 “노조 활동을 하게 되면 2년 동안 경력 관리에 차질이 생겨 이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일단 신문산업의 경영적 어려움과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이중고 속에서 선뜻 노조 위원장 자리에 나서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언론노조 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까지 노조 집행부였던 한 관계자는 “조합원·지부별로 다른 사유가 있겠지만 밑바닥에는 언론노조 운동에 대한 필요성과 이해도 부족이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언론노조가 산별노조인 줄 모르고, 언론노조의 역할과 투쟁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노조의 질적 향상을 고민하는 전환점이 마련돼야 한다. 조합원들의 생존권 보장과 공정 보도, 이 두 가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다른 관계자는 “언론노조가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책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언론노조가 각 정당에 보낸 정책협약서에는 신문·방송 전반에 대한 전망과 계획, 비전이 있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공감대를 마련하고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진행돼야 했는데 그런 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별노조의 가장 큰 역할은 정책과 전망을 제시하는 것인데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해 지부별로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막막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언론노조 차기 집행부 선거에서 지부 공백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지 심도 있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오정훈 후보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각 지부의 상황이 달라 똑같은 원인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그렇다고 ‘다들 기피한다’는 이유로만 분석할 순 없다”고 말했다. 윤창현 후보자는 “그동안 언론노조에서 언론개혁의 이슈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언론노조의 조직력이 강해져서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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