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군 맞은 2MB, 학원 24시간 자율화 조례

‘학생이 공부하다 죽었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는 서울시의회 의원들에 의해 관료는 어떠한 교육 체계에도 완벽하게 무지함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참을 수 없이 과격한 서울시 의회다. 혁명적으로다가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던 2MB까지 나서 서둘러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에서 학원 24시간 자율화 조례의 급진성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과연 영어 몰입 교육으로 대변되는 2MB의 자본주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반드시 실패한다. 왜? 공무원이 출근하기 때문이다. 2MB의 집권 한 달여지만 벌써부터 실패를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 수두룩 빽빽히 쌓이고 있다. 관료, 그 근대적 집단은 자본주의 혁명을 성공시킬 준비를 도통 안 하고 있다. 아예 이해 자체를 안 하려 한다는 느낌도 든다.

▲ 한국일보 3월15일자 7면.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날로 의미를 더해가는 중요한 단어를 꼽으라면 ‘충돌’이다. 실제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노무현 정권을 설명하는 핵심어 역시 ‘충돌’이었다. 노무현은 검사를 들이받는 퍼포먼스로 임기를 시작하더니 지지자를 들이받는 대형사고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2MB는 공무원들과 ‘충돌’하고 있다. 고시 패스한 이들한테 서슴없이 ‘머슴’이란다. 2MB 먼저, 장군 부른 셈 되겠다. 그러나 몇 년 전 젊은 검사의 눈빛 기억나나? 상대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눈에 뵈지도 않는 수준의 권력인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이 원한다면 한 번 토론해보자고 멍군 불렀다.

학원 24시간 자율화 조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선 첫째는, 가치의 충돌이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포장에 불과한 충돌인데 청소년의 학습권과 건강권의 충돌이다. 두 번째는 이보다는 조금 복잡한 정치의 충돌인데 앞서 잠깐 얘기한 것처럼 비즈니스 프랜들리가 되려는 2MB와 이를 너무 많이 이해하고 있거나 아예 뭔 말인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관료 머슴들의 충돌이다. 흥미진진한 그 충돌의 규칙을 이해해보자!

첫 번째 충돌, 학습권 vs 건강권

때때로 하나의 권리를 강조, 우선시 하는 척하면서 다른 권리를 깡그리 짓밟는 경우가 있다. 대개의 경우 권리의 충돌이라기보다는 사적 이해관계 특히 소유 과대의 욕심이다. 서울시 의회 정연희 교육문화위원장은 "건강권은 자기(본인)가 지키는 것이지,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으로 이번 결정의 논리적 합리성을 강조했다. 말이야 백번 옳은 말이다. 순간적으로 자유를 사랑하고 자율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반박의 침을 뱉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학원 24시간 자율화 조례가 청소년 건강권의 자율성 확대의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말은 강남에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면 서민의 주거가 안정될 것이라는 말과 같다. 당연히 그게 아니다. 이번 결정은 학습권의 보장과 건강권의 자율성이라는 논리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것은 자다 봉창 두드리는 말장난일 뿐이고, 그냥 학원 업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청소년의 사회 문화적 권리를 봉쇄하는 횡포일 뿐이다. 권리를 포장지로 사용하여 사적 이익을 감추는 수법일 뿐이다. 따라서 첫 번째 충돌은 충돌 아닌 것 되겠다. 충돌을 위장하여 허위로 보험금(수강료) 타내려는 수법이다.

두 번째 충돌, 2MB vs 관료

2MB는 관료에게 머슴이 되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전까지 2MB에게 관료는 머슴이 아닌 건달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관료의 우두머리가가 된 2MB는 상인 출신이다. 이것은 묘한 역설이다.

▲ 한겨레 3월18일자 34면.
철학자 김영민의 <건달인간론>에 따르면 건달은 같은 동네의 조폭이면 저주당하고, 영화나 TV의 건달이면 열광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다. 오호라, 이건 마치 공무원이다. 우리에겐 동사무소의 불친절한 아저씨를 저주하면서도 누구나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공무원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자본주의적 삶의 제1원칙인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다는 점도 건달과 공무원의 공통점이다.

고로 건달과 공무원은 자본주의 이전의 유토피아적 중세의 직업이고, 자본주의적 삶에 공생(혹은 기생)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같다. 한 마디로, 영원한 구체제의 산물이다. 이에 반해 상인은 근대 이후에 출현하여 오랫동안 건달과 관료에 맞서 싸우고 또 화해하되 끝내 질 수밖에 없는 계층이다. 상인에게 최대의 적은 자신의 생산을 갈취하는 건달과 소유를 규제하는 관료이다.

2MB의 교육 정책의 목표는 효율성이다. 그 효율성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최적화된 상인의 효율성이다.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그의 공약이 영어몰입교육으로 드러나는 것은 공교육을 살려야하는 이유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어몰입으로 이룩하는 2MB식 공교육 강화이다. 그런데, 갈취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달 같은 서울시 의원들이 2MB의 메시지를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

교육 정책이라는 것이 ‘공’교육, ‘공’공성, ‘공’평함 등을 앞세우는 최소한의 ‘공’적 형식미를 갖춰줘야 하는 것인데, 관료들이 2MB의 출신 성분을 지레 짐작하고 건달스럽게 알아서 기며 교육 정책을 ‘사’교육, ‘수’익성, ‘사’익 등을 전면화하는 ‘사’업의 내용으로 처리해 버렸다. 어쩜 그들의 억울한 심정은 다른 이는 몰라도 2MB라면 잘했다고 칭찬 할 줄 알았는데 하는 마음 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충돌이야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겠지만 2MB의 고민은 깊어 질 것 같다. 2MB는 애당초 예상과는 달리 끝끝내 변하지 않으려는 관료들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상인이 아니다. 이제 그는 정체성에 맞던 맞지 않던 간에 자발적으로 공적 영역을 허물어 국민 정서를 급격히 상하게 하는 ‘똑똑한’ 관료 그룹을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생산의 무서움을 모른 채, 2MB식으로는 부도와 파산을 체험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에 공생하기만 해온 건달들을 제압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게 우리가 불친절한 공무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저주하는 이유 아닌가? 건달의 변신을 요구하는 시대를 강조해온 2MB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어쩜, 고전은 2MB 정권의 숙명이다.

학생이 공부하다 죽었다는 얘기 들어봤다.

학생이 공부하다 죽었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는 의원님도 계시지만, 그 의원도 우리와 같이 매년 수능만 끝나면 수험생이 자살하는 나라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파국에 이른 공교육과 매년 활황을 경신해가는 사교육의 명암이 대비되는 나라에서 24시간 교습 못해 돈 못 벌었다는 학원 못 봤다. 작작 좀 해라!

학교라고 믿었던 사회운동을 휴학하고 몸을 더듬어보니 라이타 한 개밖에 없더라는 싸구려 열정에 여전히 감격하는 청년 백수. 을용타에 열광하는 청년 백수들이여,라이타(right-打)하라! 오른쪽을 때려라!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