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기용, 차출 등 조광래호 축구대표팀과 관련한 일부 문제 때문에 또 다시 다소 어수선했던 한국 축구였지만 이 같은 분위기를 바꿀 만한 큰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바로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이 그 무대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두 팀의 준결승 진출팀을 배출한 K리그는 3년 연속 정상 정복을 위해 중동 두 대표 사우디아라비아(알 이티하드)와 카타르(알 사드)의 '모래벽'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K리그의 두 대표,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우승 도전이 기분 좋게 이어질 수 있을지 K리그 팬들의 관심은 서서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 전북 이동국과 수원 마토가 볼다툼을 하고 있다. 둘은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맹활약하며 4강 진출에 일등 공신이 됐으며, 4강전에서도 키플레이어로 거론되고 있다.
3번째 준결승 두 팀 배출, 이번에는 다르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범 이후 지금까지 준결승에 K리그 팀이 두 팀 이상 진출한 적은 두 차례 있었습니다. 2004년에는 성남 일화와 전북 현대, 2006년에는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가 나란히 4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2004년에는 성남만 결승에 올랐고 전북은 알 이티하드에 1무 1패로 져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전북과 울산이 준결승에서 만나 전북 현대만 결승에 올라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5년 만에 K리그는 2팀의 준결승팀을 배출했고, 사상 첫 동반 결승 진출이라는 위업을 눈앞에 두게 됐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까지 합치면 수원 삼성과 안양 LG가 결승에서 맞붙었던 2002년 이후 9년 만에 이 위업에 도전하게 됩니다.

도전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전북이 상대할 알 이티하드는 이미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경력이 있으며 전북에도 2004년 준결승에서 상처를 준 적이 있는 팀입니다. 수원이 상대할 알 사드는 16강, 8강에서 알 샤밥(사우디), 세파한(이란) 등 강팀을 이기고 올라왔으며, 수원에서 뛴 바 있는 국가대표 수비수 이정수가 버티고 있는 팀입니다. 하지만 전북, 수원 역시 이번이 '우승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당찬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북은 8강에서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를 맞아 골문을 초토화시키며 가장 많은 골을 넣고 4강에 올랐습니다. 수원 역시 이란 조바한을 원정에서 꺾고 AFC 챔피언스리그 첫 준결승에 올라 기세가 올라있습니다. 내친 김에 중동 대표 두 팀을 완전히 꺾고 AFC 챔피언스리그 출범 후 첫 동일 리그 팀 간 결승전 성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대표 = 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수원 결승전이 성사되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K리그 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결승전 성사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K리그는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을 배출해왔습니다. 그 덕에 K리그의 위상은 많이 올라갔고, 이는 다른 팀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K리그의 질적인 향상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이에 따라 K리그에 대한 견제도 심해졌습니다. K리그를 넘어서기 위한 각 팀들의 몸부림, 특히 일본 J리그의 분발 의식은 대단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K리그는 J리그를 멀찌감치 따돌렸고 굴욕을 안겼습니다. 만약 전북, 수원이 모두 결승에 오른다면 AFC 챔피언스리그 첫 동일 리그 결승전 성사라는 기록 뿐 아니라 '아시아 대표 리그= K리그'라는 등식을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한동안 물량 공세를 했던 일본 J리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리그를 넘어서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한 K리그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침대 축구'로 대표되는 중동 축구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데도 이 결승전 성사는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 중동은 틈날 때마다 한국을 '종이호랑이' 취급해왔고, 실제로 한국은 중동만 만나면 맥을 못 추는 경기를 펼치며 불의의 일격을 자주 당해 왔습니다. 오일 머니로 무장해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중동 축구의 기세는 국가대표와 클럽 모두 기세등등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해 급기야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 한 팀도 본선에 오르지 못한 굴욕을 맛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클럽 축구마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팀조차 배출시키지 못한다면 한 방 얻어맞고 침체될 공산이 커집니다. 개인 기술을 바탕으로 축구를 하지만 틈날 때마다 시간 지연을 하는 '후진형 축구'로 비아냥을 샀던 중동 축구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밟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번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입니다.

시련, 무관심을 훌훌 털 수 있는 ACL 결승 동반 진출

올해 들어 산전수전을 겪었던 K리그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동반 진출은 큰 의미로 다가오면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올해 K리그는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승부조작 사태로 제대로 직격탄을 맞으며 침체의 늪에 빠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결승 진출을 두 팀 모두 이끌어낸다면 3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배출을 확정지으면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아시아 축구 축제'를 흐뭇하게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국제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것 자체만으로도 K리그 모든 구성원에 좋은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TV 생중계 거의 전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아시아 정상을 향해 힘차게 질주해 온 K리그 두 팀,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도전은 이제 한 고비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 팀 모두 결승에 오르면 AFC 챔피언스리그 첫 3년 연속 단일 국가 리그 우승이라는 쾌거도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이룰 수 있는 기록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두 팀 결승에 올라서 아시아 축구 전체 구성원에게 K리그, 한국 축구의 저력, 그리고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국의 순도 높은 득점력, 염기훈의 절묘한 왼발킥, 스테보, 에닝요 양 팀을 대표하는 두 외국인 선수의 수준 높은 공격형 플레이 모두를 한 자리에서 아시아 축구 전체에 보여줘 K리그가 아시아 축구의 수준을 높이는 데 좀 더 기여하는 '선두 주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의 장면이 곧 나타날 수 있기를, 두 팀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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