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가장 뜬 선수는 바로 '구자봉'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이었습니다. 감각적인 플레이와 인상적인 볼 컨트롤, 그리고 드리블, 패스, 슈팅 등을 모두 갖춘 다재다능한 미드필더로서 박지성의 계보를 이을 차세대 중원 사령관으로 화려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5골까지 집어넣으며 덤으로 아시안컵 득점왕에도 올랐습니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의 상처를 딛고 구자철은 그렇게 몇 개월 사이에 에이스급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기세를 이어 독일 볼프스부르크로 이적, 유럽 진출의 꿈도 이뤘습니다. 탄탄대로였습니다.

하지만 반년이 조금 흐른 10월, 구자철은 '예전의 구자철'이 아니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와의 브라질월드컵 예선전에서 그가 선보인 플레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장기였던 날카롭고 감각적인 플레이는 온데간데없었고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패싱 게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했던 그였지만 겉돌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도한대로 경기는 풀리지 않았고 전반 내내 답답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설상가상 후반에는 상대 선수에 걸려 넘어져 발목 인대를 다치는 부상도 당했습니다. 몇 달 전 팀 훈련 도중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던 적이 있었는데 똑같은 부위를 다시 다쳐 최소 2주는 쉬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시련의 연속입니다.

▲ 구자철 선수ⓒ연합뉴스

분명한 것은 1월의 구자철과 10월의 구자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월 카타르에서의 구자철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조광래호의 다득점에 큰 견인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패스면 패스, 슈팅이면 슈팅, 여기에다 수비력까지 더해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10월의 구자철은 아니었습니다. 자기 위치부터 제대로 찾지 못했고,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도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전방 플레이를 고집하다보니 패스는 끊기기 일쑤였고, 흐름 역시 계속 끊어졌습니다. 컨디션이 나빴던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평소 수준보다 낮은 플레이를 펼친 구자철의 폼은 확실히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최근 몇 달 사이에 똑같이 나타났던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시련이 장기화돼 오랫동안 부진하는 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점입니다. 가뜩이나 소속팀 볼프스부르크에서도 1경기만 선발 출전해 입지가 좋은 편이 아닌데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워낙 최근 몇 년 새 쉼 없이 시즌을 보내고 있어 재충전이 필요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유럽 무대 정착을 바라는 구자철 입장에서는 이런 부상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져 플레이마저 위축된다면 슬럼프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구자철의 최근 부진은 예고됐을 수 있습니다.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다보니 경기 감각이 떨어진 것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위축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복이 급선무이고 당장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단순한 해결 방안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극복해야 하는 유럽 무대에서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반전과 기회가 필요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습니다. 구자철 자신도 어느 정도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구자철의 부진은 곧 축구대표팀의 흐름과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6월 가나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리며 조광래호의 비유럽팀 무패 행진에 큰 견인을 했을 때만 해도 구자철의 상황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8월 한일전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치고 결정적인 슈팅마저 꽂아 넣지 못했을 때부터 시작해 꾸준하게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그였습니다. 그에 맞춰 조광래호 역시 2승 2무 1패를 거두기는 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시안컵 때와 정반대의 행보를 걸어가며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자철의 운명은 곧 조광래호의 운명이며, 구자철이 살아야 조광래호도 산다는 얘깁니다.

구자철은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예비 에이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히려 이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져 한층 더 떠오르는 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시련을 얼마나 짧게 끊어내느냐입니다. 대표팀 동료 기성용이 체력적인 문제를 안고서도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골고루 좋은 활약을 펼친 데에는 스코틀랜드리그 데뷔 초반 겪은 시련을 최대한 짧게 끊어내 자신감을 갖고 덤벼들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진에 따른 우려를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구자철의 능력을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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