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의 예고대로 선발 출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향한 그의 표정은 끝까지 결연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34분, 기회가 왔습니다. 부상당한 박주영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은 것입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비록 원했던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쉬움은 많았어도 꿈을 향한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습니다. 1년 4개월 만에 A매치 '정식 복귀전'을 치른 '라이언킹' 이동국(전북 현대)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이동국이 11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랍에리미트(UAE)와의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B조 3차전에 후반 34분 교체 투입돼 10여분 간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지난 7일 폴란드전과 다르게 조커로 경기에 투입된 이동국은 공격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변화한 경기력으로 막판 분위기를 끌어내는 데 역할을 다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경기에서 승리한 한국 이동국이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이었습니다. 선발이 어울리는 이동국에게 10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가혹하게 여겨졌을지 모릅니다. 대표 경력이 10년이 넘어도 조커로 출전해 골을 넣은 기억이 없을 만큼 후반 막판 조커 출전이 조급함을 가져다줬을 수도 있습니다. 그 조급함이 나타나다보면 자신의 장기를 살리지도 못하고 볼 한 번 제대로 잡지 못하며 경기장을 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안정된 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10분 동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폭넓게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괴롭혔고, 몸싸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볼경합에서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손흥민, 서정진 등과의 콤비 플레이도 괜찮았고, 패스 플레이 역시 실수가 없었습니다. 후반 45분에는 세트 피스 상황에서 헤딩슛까지 하며 존재감을 보였습니다. 이타적인 플레이에 눈이 떴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음을 이동국은 그 10분이라는 시간동안 보여줬습니다. 단지 K리그에서 보였던 폭발적인 공격포인트 본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타깃형 스트라이커였던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것은 지난 2009년 K리그 득점상을 차지하고 MVP를 차지했을 때였습니다. 그저 파트너 선수의 패스를 받아 골만 넣는 선수로만 여겼던 이동국은 이때부터 이타적인 플레이에 눈뜨기 시작해 달라진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2년 뒤인 2011년 올 시즌에는 15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한 시즌 최다 도움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그의 플레이는 완전히 제대로 무르익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놓치지 않은 조광래 감독은 뒤늦게 이동국에 기회를 줬고, 이동국은 최선을 다해 국가대표 복귀전을 치렀습니다.

이동국을 향한 시선이 완전히 곱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조광래 감독은 경기 후 이동국의 재기용에 대해 말을 아꼈으며, 몇몇 언론과 팬들은 이동국이 한풀이에 실패했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상까지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여주려 했던 이동국의 노력만큼은 충분히 평가할 만했습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서, 임팩트 있는 골을 넣지 못했다 해서 싸늘하게 바라볼 수 있을지 몰라도 1년 4개월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대표팀에 적응해 나가고자 했던 그의 플레이는 분명 눈에 보였고, 이는 칭찬받아 마땅했습니다.

자신이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 때문이었는지 이동국은 경기 후 말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래도 많은 팬들은 주어진 시간동안 최선을 다한 이동국을 연호하며 격려를 보냈습니다. 이동국은 뒤늦게 트위터를 통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이름을 외쳐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에 인사를 드립니다"면서 전북 현대의 우승을 위해 다시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아쉬움은 있어도 팀을 위해 다시 뛰겠다는 '팀정신'을 발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동국의 모습을 다음 달 열리는 월드컵 3차예선 중동원정 2연전에서도 다시 보고 싶습니다. 10분이라는 시간으로 그를 평가하고 모든 것을 잘했다 못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쉬웠고, 그만큼 이번 아랍에미리트전에서 열심히 뛰었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을 뒤늦게 발탁해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이동국 활용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조광래 감독의 심사숙고가 어떤 결정으로 이어질지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10분 뛴 이동국의 복귀전은 박수받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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