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베트남 신부를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남성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숙함과 야만성에 대한 절절한 자책을 판결문에 담았다는 기사가 지난 3월 13일(목)에 보도되었다. 과거 난삽한 문장과 가장 잘못된 문장구조의 전형으로 여겨져 온 무미건조한 판결문과 대비되는 이례적 판결을 보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야만적’태도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한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사건을 잠시 소개하자면 이렇다. 남편에게 살해당한 이주 여성인 열아홉 살 후안마이는 2006년 12월 베트남에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장아무개(47)씨와 그날 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지난해 5월부터 한국에서 함께 살았다. 언어격차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의 학대와 낯선 환경에서 생활해야 했던 고후안마이씨는 갖은 고초와 번뇌를 겪은 끝에 결국 타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결혼 한 달 만인 지난해 6월, 남편에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남긴 뒤 고국으로 떠나려다 술에 잔뜩 취한 남편에게 마구 맞아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남편 장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고,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상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대신한 고 후안마이씨에 대한 사과문

재판부는 후안마이씨의 편지 내용을 판결문에 담은 뒤 그에 대한 답장처럼 판결문을 써 내려갔다.

▲ 한겨레 3월13일자 9면.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머나먼 타국에서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고후안마이씨는 살해당하기 직전 남편에게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라는 말로 시작된 장문의 이별편지를 남겨 애달픈 여운을 주었던 것이다. 피해자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고 건강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요”라면서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당신이 제게 많은 것을 알려주길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라고 써내려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이어진 글에는 “저는 당신이 맘에 들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았을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뿐이었죠. 하지만 베트남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길 바래요”라고 홀로 남게 될 남편에 대한 애틋한 감정까지 드러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에 갇혀 사회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고 우리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질타한 뒤, “장 씨가 베트남현지에서 졸속으로 아내를 만나는 과정을 보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배우자가 될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도, 알고자 하지도 않고서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면서 배우자를 선택했다”면서 “장 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타국여성들을 물건 수입하듯 하는 우리사회의 미숙함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경제대국의 허울에 갇힌 우리는 19살 故후안마이 씨의 작은 소망도 지켜줄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사건이 장 씨에 대한 징벌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판결문에는 어린나이에 시집온 피해자가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애틋한 부부관계를 꿈꿨지만 남편의 배려부족, 경제형편, 언어문제로 원만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고 장씨는 결혼생활 청산과 귀국을 결심한 피해자에게 사기결혼을 당했다고 착각해 부인을 살해하고 말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의 베트남 현지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결혼정보업체와 관계당국 모두 소재파악을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판결문을 써내려간 재판부는 “한국사회의 야만성에 대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심정이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 채 판결을 내려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가해자를 대신해 ‘참회록’을 쓰면서 ‘타국 여성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을 우리사회에 대한 준열한 외침으로 제기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한 단면 국제결혼 … 이면에 드러워진 배우자에 대한 야만적 처우

이제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으로 정착된 국제결혼 가정 가운데 배우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 또 그에 앞서 결혼의 진지함이 결여된 ‘매매혼’의 후유증 등으로 파탄, 파경을 맞는 가정의 사례가 그리 드물지 않은 것 같다. 2월 6일 경북 경산시에서 입국 1주일 만에 협의 이혼에 합의한 베트남 출신 신부가 아파트에서 추락사해 그 사인을 둘러싼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극단적 사례일 뿐이다.

▲ 한겨레 3월18일자 29면.
대법원이 호적예규 제715호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의 혼인에 관한 사무지침’을 만든 것은 2006년 7월21일, 또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주석이 “베트남 신부들을 잘 대해 달라”고 호소한 것은 지난해 10월30일의 일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사람 사는 정을 위해 “오로지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 뿐, 뒷감당에 관해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피고인만을 지탄할 순 없다”고 한 재판부의 지적을 진정 우리 사회가 가슴으로 새겨들어야만 할 것이다.

한동안 굉장히 희귀한 것으로만 알았던 국제결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이 됐다는 점을 통계가 입증하고 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동태자료에 따르면 2005년 국제결혼은 4만3121건으로 전체 결혼의 13.6%에 이른다. 결혼하는 8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은 3만1180건이나 된다. 1990년 한국 남성과 혼인 신고한 외국인 여성 수가 619명이었던 것에 비추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주한 외국 여성의 국적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조선족 포함), 베트남, 일본, 필리핀 등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요즘은 캄보디아에서 온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과거 베트남에서 결혼 브로커의 행태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결혼 브로커가 캄보디아로 많이 진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씁쓸하다. 이렇게 다문화 가족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인 지원 제도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2006년 4월 정부가 발표한 ‘여성 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이 처음이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의 국제결혼은 만남부터 결혼까지 최대 1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다. 당연히 결혼한 이후에도 보디랭귀지 외에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언어 소통이 안 되니까 서로 오해가 쌓여가면서 가정 불화를 겪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같은 문화 속에서 성장하여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몇 년을 사귀다 결혼한 사이에도 실제 혼인생활을 겪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대방의 습관에 당황하고 다투는 일이 속출하는데,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남녀간에 생기는 수 많은 문제들을 어찌 예상할 수 없겠는가.

다문화가족이 가장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는 문제는 자녀 출산과 교육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산바라지를 해줄 사람이다. 이주 여성은 돈이 없어서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부의 산모 지원 혜택도 받지 못한다. 동사무소 사회복지과에 도움을 요청해도 기초수급자가 아니면 해당사항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또 자녀교육을 전담하는 엄마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자녀도 언어 발달이 늦다. 엄마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살아야 하므로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기도 힘들다. 아이는 아이대로 한국말도 잘 못하고 엄마의 모국어도 잘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문화가족, 가장 힘든 건 자녀 출산과 교육의 어려움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도 손에 꼽을 정도다. 또 이주여성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자격이 생겨도 남편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들이 “너희 나라로 가라” 혹은 “국적 취득은 꿈도 꾸지 마라”라는 폭언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또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는 외국인등록증을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남편이나 제3자의 신원 보증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주여성에게는 어려운 점이다.

‘다문화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 지원이 아닌 ‘다문화적’ 정책 지원이다.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어 교육과 더불어, 배우자와 자녀들도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한 이주여성의 일자리도 확대해야 한다. 다문화 가족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데, 이주여성이 언어의 소통문제로 가정에만 머물면 ‘가난의 대물림’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내에 결혼으로 이주한 여성이 18만명에 달하고, 외국인 근로자 40만명, 외국인 100만명인 시대다. 다민족·다문화 시대에 어울리는 법과 제도, 문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우리 안의 서양숭배주의·오리엔탈리즘·인종주의, 지나친 물신숭배로 인한 정신적 가치의 상실 등 닫힌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솔직하게 인정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계 귀화인인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는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출판)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순혈주의의 근저인 우리 안의 인종주의의 단면인데,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근대화된 유럽을 숭배하면서 이웃 아시아는 깔보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욕망을 닮았다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순혈민족일까.

다문화가족에세 필요한 건 다문화적 정책 지원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우리 민족의 기원은 남방계 30~40%, 북방계 60~70%의 혼혈민족이라며 생태학적 차원에서 보면 섞여야 강해지고 섞여야 건강하고 섞여야 아름답다고 했다. 유전자가 다양하지 못해 늘 전염병 앞의 등잔불처럼 살아가야 하는 단일민족이 아니라 정력적이고 아름다운 혼혈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려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단군 이래 5000년 단일민족이라는 패러다임은 낡은 유물일 뿐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최 교수는 또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것보다 노동인구의 이민을 좀더 자유롭게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민 인구는 상대적으로 젊은 데다 제1세대 이민 여성들의 출산율 역시 높고, 미국이 선진국들보다 고령화의 충격에 덜 흔들리는 까닭은 일찍부터 문호를 개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중국사람들이 버텨내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읽고, 미묘한 감정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혼혈아로 태어나 우리의 이웃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이태원에서 외국인으로 행세하며 살아가야 하는 가슴아픈 사연이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소개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만큼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지나치게 가혹했던 것이 아닐까. 같은 외국인이라 해도 백인과 유색인종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 태도는 사뭇 노골적이기도 하였다는 점을 뼈저리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이민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던 독일도 2020년까지 노동인구 100만명을 유입하고, 일본도 매년 5년 기한으로 50만명을 유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순혈주의보다는 다민족·다문화가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혼혈아”, “트기”라는 말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방치하는 것보다 이제 국제화되고 다문화된 우리의 현실에 맞는 법과 제도, 새로운 문화와 인권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아내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우며 시골 마을에 깃들어 있다. 가진 능력이라곤 번식력밖에 없다는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얼치기 법조인이기도 하다. 짧은 공직생활 중 여러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과 정의의 소중함을 절감하였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였다.

조직이라는 이름과 명분 아래 수 많은 사람들의 인격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며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어 더욱 과격해지는 자아를 다독이기도 한다. 맑은 세상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중받고 부패의 악취가 말끔히 사라진 세상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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