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까지만 해도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의 행보는 거침없었습니다. 지난해 8월 출범한 뒤 10개월 동안 9승 4무 1패(아시안컵 4강전 한일전은 공식적으로 무승부)를 기록했고, 특히 지난 6월 가나, 세르비아 등 강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아시안컵에서 51년 만의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적절한 신-구 조화를 통해 새로운 축구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창창한 미래를 예감케 했던 조광래호였습니다.

하지만 8월 일본과의 원정 경기에서 0-3으로 참패한 뒤 조광래호의 기세는 한풀 꺾였습니다. 레바논과의 월드컵 3차예선 첫 경기를 대승으로 장식하긴 했지만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예선 원정 경기,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잇달아 많은 허점을 드러내며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결과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조광래호 특유의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고, 수비, 측면 플레이 등에서 별다른 나아질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늘 강조하지만 브라질월드컵을 향하고 있는 조광래호가 첫 번째 중대한 고비를 맞이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 7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의 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이 후반 역전골을 넣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바로 오늘(11일) 저녁, 조광래호는 월드컵 3차예선 세 번째 경기 아랍에미리트(UAE)와 경기를 갖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UAE에 앞서 있다고 하지만 최근 분위기만 놓고 보면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경기 결과를 떠나 내용 면에서 뭔가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해야 하는 조광래호입니다.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잠시 정체됐던 모습을 풀고 전환점을 찾는 조광래호가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경기를 통해 조광래호는 여러 가지 큰 문제점을 노출하며 불안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다 할 해결책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수비 문제는 조광래호의 최대 숙제로 한동안 계속 남을 공산이 큽니다. 여기에다 박지성, 이영표의 대표팀 은퇴 이후 이렇다 할 구심점 역할을 할 선수를 찾지 못해 전술적으로 서로 겉도는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스타급 자원으로 떠올랐던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은 하락세를 겪고 있으며, 확실한 측면 공격 자원이었던 이청용(볼턴)은 정강이뼈 골절 부상으로 한동안 뛰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주축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다보니 다른 선수들 역시 영향을 받고 있고, 실험만 하다 뚜렷한 색깔도 보여주지 못한 채 들쭉날쭉한 경기력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정체기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여건 아래서 경기는 펼쳐야 합니다. 그것도 월드컵 3차예선 반환점을 도는 3번째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고 홈에서 치러지는 경기이기에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과 뿐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조광래호는 분명히 이전 몇 차례 아쉬웠던 것을 훌훌 털어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나마 한일전 이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광래호에 열광했던 것은 새로운 실험, 변화를 기반으로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랬던 모습을 다시 찾는 것이 이번 아랍에미리트전에서 조광래호가 꼭 해결해야 할 첫 과제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아랍에미리트전을 위해 준비한 카드는 다양합니다. 조 감독은 폴란드전에서 새롭게 떠오른 신예 서정진(전북 현대)의 활약, 그리고 최근 A매치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며 그나마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박주영(아스널)의 골폭풍, 기성용(셀틱)-이용래(수원 삼성)-구자철로 이어지는 미드필더 삼각 편대의 매끄러운 경기 운영 등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라이언킹 이동국(전북 현대)은 후반 조커 투입으로 분위기 변화 또는 큰 점수 차로 앞서 있을 때 쐐기를 박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비에서는 공격 가담과 수비 능력을 골고루 갖춘 측면 수비수 홍철(성남 일화)과 최효진(상주 상무)이 얼마만큼 제 역할을 다 할지 주목됩니다. 미드필드 진영부터 이뤄지는 강한 압박, 그리고 빠르고 다양하게 이뤄지는 패스플레이로 상대의 밀집수비를 뚫고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이번만큼은 제대로 보여줄 수 있기를 조 감독이나 선수 모두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조광래호의 이번 목표는 당연히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만큼이나 내용적인 면에서도 화끈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부담은 있어도 이번 아랍에미리트전만큼은 정말 무언가 임팩트 있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를 풀어가는 역량은 조광래 감독의 머리와 선수들의 플레이, 그리고 팀 전체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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