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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새해에 제대로 고른 가족영화[고브릭의 실눈뜨기]
고브릭 | 승인 2021.01.05 13:09

 *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 제대로 고른 신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됐다. 밤 9시 이후로는 식당 영업도 멈췄다. 강제집콕으로 어느 때보다 가족영화에 대한 수요가 많을 새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2017년 작품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제대로 고른 신작>은 그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작품이다. 동시에 유머를 품고 있는 수준 높은 코미디이기도 하다. 발음부터 까다로운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의 접근에는 이번에도 작품소개가 큰 도움이 된다.

“마이어로위츠 집안의 세 남매가 연로한 조각가 아버지의 회고전을 준비하기 위해 재회한다. 오랜 세월동안 뿌리내린 가족의 갈등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지금 풀릴 수 있을 것인가?”

회고전을 앞둔 마이어로위츠 가족의 주요 문제는 부동산과 조각품의 처리다. 해롤드는 매튜를 통해 집과 작품을 매각하려하고 대니는 반대한다. 그런데 가족들이 모두 모여 문제를 논의하기도 전에 해롤드가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이때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똘똘 뭉치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면 서두에서 ‘어른스럽고 현실적’이라는 표현을 아꼈을 것이다. 위기상황을 건너가기에는 수십년간 벌어진 갈등의 폭이 결코 좁지 않은 탓이다. 

뉴욕에 거주 중인 아버지 해롤드(더스틴 호프만) 조각가다. 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임했지만 명성이 높지는 않고 예술가적 기질로 포장되기도 하는 오만함과 아집, 이기주의와 본인만 인정않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괴팍한 노인네다. 해롤드는 세 번의 결혼을 했고 세 명의 자녀가 뒀는데 어머니가 다른 배다른 남매다.

장남 대니(아담 샌들러)는 피아노에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해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다. 차남 매튜(벤 스틸러)는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성공한 회계사가 되었지만 해롤드의 독단적인 모습에 질려 멀리 LA에 거처를 두고 독립했다. 마이어로위츠 집안의 갈등은 대체로 해롤드 vs 대니, 해롤드 vs 매튜, 대니 vs 매튜의 구도로 벌어지는데 유일한 딸인 장녀 진(엘리자베스 마블)은 항상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 제대로 고른 신작>

용서할게요. 용서해주세요 (I forgive you. Forgive me)

부동산 처리건으로 표면화된 갈등은 해롤드에서 시작된 게 맞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해롤드가 일부러 자녀들이 가까워지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가까워질수록 결혼생활에 실패했다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의 성장에서 부모의 영향이 거의 세뇌 당하는 수준으로 큰 탓에 여기서 벗어나는 게 작품의 목적이라고도 밝혔다.

해롤드의 회피와 방치는 특히 대니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대니는 아버지에게 사랑과 인정 받지 못했지만 장남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평생 변변한 직장을 가진 적도 없고 다리에 부상을 당해서 절뚝거리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혼까지했다. 대니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아버지 주위를 맴돌며 장남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집과 조각품의 판매에 반대하는 이유도 어렵게 지켜온 ‘가족’이라는 상징물이 소멸하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시작이라는 말이 원인이라는 말과 같지는 않다. 해롤드가 잘했다는 말도 결코 아니다. 삶의 대부분 문제들이 그렇지만 특히 가족 사이의 문제는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의 인생을 산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자녀도 자녀가 처음이며, 애정으로 시작한 행동이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플래시백(회상씬)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과거의 사건들은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만 제시된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보여주려는 게 아닌 탓이다.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 제대로 고른 신작>

하나의 예로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조각품 중 하나는 차남의 이름은 딴 ‘매튜’다. 차남인 매튜는 해롤드가 조각할 때 본인이 옆에서 조수처럼 거들고 귀엽게 조언을 하기도 해서 이름이 조각품의 이름이 ‘매튜’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야 진실이 밝혀진다. 매튜를 조각할 때 해롤드와 같이 작업을 했던 건 사실 장남인 대니였다는 것. 이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들 사이에서도 기억은 왜곡된다. 인과관계를 어떻게 명확히 밝혀낼 수 있을까.

그래서 영화는 다른 길을 택한다. 인과를 밝혀내 갈등을 뿌리 뽑으려는 게 아니라 즉각적인 상황관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대니와 진, 매튜는 돌아가며 아버지를 간호하고 회고전을 준비하며 그간의 서운함을 터놓는다. 물론 캐캐묵은 악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질리는 없고 끝내 폭발하고만 대니와 매튜는 회고전 중간에 격한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오랜 과거를 끄집어내지 않고 지금의 속상함도 묵혀두지 않는다. 비록 쌍코피가 터지고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지언정.

한편 해롤드는 뇌출혈에 패혈증까지 겹쳐 혼수상태를 헤맨다. 가족들을 불러모은 담당의사는 더 늦기 전에 해롤드에게 이 말을 자주해주시라 권한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용서할게요. 용서해주세요(I’m sorry. I love you. I forgive you. Forgive me.) 대니는 산소호흡기와 각종 치료기구를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해롤드를 보며 착잡한 심정으로 조용히 그 말을 읊는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해롤드가 깨어난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나머지는 바뀐 건 없다. 큰 병을 치렀지만 여전히 이기적이고 오만하다. 대니가 매튜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곁에서 간호해주기를 집요하게 부탁한다. ‘용서해주세요. 용서할게요.’ 대니는 더 늦기 전에 해야했던 말을 제대로 된 시간에 조용히 읊조린 뒤 케이크를 담은 접시를 바닥에 내던지고 매튜의 집이 있는 LA로 향한다. 

영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 : 제대로 고른 신작>

가르치지 않아도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도 배우는 사람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가 『안나 까레리나』를 열며 시작한 문장은 가족의 특성에 대한 통찰,  중 가장 빛나는 하나일 것이다. 영미권에서 ‘마이어로위츠(Meyerowitz)’라는 성(姓)이 흔하지는 않다. 반면 해롤드, 대니, 진, 매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 흔하지 않은 성과 흔한 이름의 절묘한 조합처럼 마이어로위츠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아마 특수하지만 보편적이다. 우리들의 가족도 고만고만하지만 고민은 제각각인 것처럼.

그래서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영화 밖에서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던져준다. 외부에서 이야기 거리를 가져와야만 겨우 이야기가 완성될 만큼 내적완결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픽션의 메시지가 현실을 흔들만큼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뻗어나간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모두의 이야기로 끝맺는 덕분이다. 그래서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보편적으로 훌륭한 가족영화이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성장영화의 성패는 ‘배울 줄 아는 사람들’이 나오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배울 줄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할 때 제때 등장하는 스승은 나만의 방식으로 모를 때 존재하며, 고유하게 모를 때 앎에 도달한다’고 말했다(『내일의 연인들』 해설 중에서). 

해롤드의 직업은 교수지만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세 남매도 해롤드에게 무언가 배우지 않는다. 교훈적으로 주고 받는 대사는 한 줄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장한다. 가르치는 자의 실패도 가르침이 되고, 스승은 기적처럼 나타나는 게 아니라 결국 우리가 찾아내고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 덕분이다. 사회를 향한 원심력보다 가정을 향한 구심력이 강한 상태로 시작한 2021년. 모쪼록 영화를 사랑하는 모두가 더 많은 인생의 아이러니 속에서 성장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길.

고브릭  redcomet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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