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A매치가 성사되려면 기본적으로 정식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여야 하며,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사항이 바로 선수 교체 한도입니다. 예전만 해도 이렇다 할 제한을 따로 두지 않았지만 지난 2004년 7월부터 A매치 평가전에서 한 팀당 6명까지만 교체할 수 있는 규정을 둬서 월드컵, 대륙별컵 대회 못지않은 수준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 그 이상을 교체하려면 경기를 벌이는 양팀 축구협회 간 합의가 있어야 하며, 중립 경기로 치러지는 경우 해당 경기가 열리는 축구협회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A매치는 그만큼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에서 치러집니다.

조광래호 축구대표팀이 지난 7일 가진 폴란드와의 평가전 A매치 무효를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조광래호는 박주영의 2골에 힘입어 9년 만에 만난 폴란드와 2-2 무승부를 거뒀지만 7명의 선수 교체를 해 결국 A매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박주영의 2골, 새롭게 발탁돼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던 서정진의 2도움 역시 기록에서 사라졌고, 폴란드와의 9년 만의 대결 자체가 기억에만 남게 됐을 뿐 기록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굳이 유럽팀을 불렀어야 했나

▲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이렇게 된 데 대해 축구협회 측은 폴란드와 사전 협의를 통해 선수 7명과 골키퍼 1명 등 총 8명을 경기 중에 바꿀 수 있었던 것을 합의했으며 이를 적용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초 선수 전체를 바꾸는 것도 생각했지만 폴란드 측에서 난색을 표해 결국 8명으로 합의했다고 하는데 이는 아랍에미리트(UAE)와의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3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고 큰 경기를 앞둔 이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큰 경기를 앞두고 전력을 점검하는 자리가 평가전인 만큼 양 팀이 합의하여 이뤄진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A매치 무효는 좀 정도가 치나쳤다 싶을 정도로 씁쓸한 면이 더 많습니다. 먼저 굳이 무효를 하면서까지 유럽 강팀을 불러 경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부터 갖습니다. 폴란드는 현재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은 65위로 29위인 한국보다 한참 아래에 있지만 올해 아르헨티나를 2-1로 이기고 독일과 2-2로 비길 만큼 전력이 수직 상승중인 '분명한 유럽 강호'입니다. 랭킹 역시 상대적으로 다른 팀에 많은 경기를 갖지 않아 피해를 봤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팀과 A매치를 갖는 것 자체로도 조광래호 입장에서는 꽤 도움이 되는 경기였으며, 축구팬들 역시 큰 관심과 화제를 모았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A매치 무효로 폴란드와의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봤던 사람들은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장기적인 전력 상승이 아닌 당장 아랍에미리트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위해서였다면 폴란드가 아닌 다른 중동권 팀과 경기를 갖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몰랐습니다.

'7명 교체 한국-2명 교체 폴란드' 사전 공지 없었던 것 아쉬웠다

만약 그렇게 합의를 했다면 양팀 모두 그 룰을 지켜야 했지만 7명을 교체한 한국과 다르게 2명만 선수 교체 카드를 사용한 폴란드를 보면 '한국만 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이왕 먼 길을 와서 치른 A매치인 만큼 제대로 해보겠다는 폴란드의 의지와 아랍에미리트전을 앞두고 실험 위주의 운영을 펼치겠다는 조광래호의 뜻과는 서로 배치가 되는 부분인데 결례가 아니었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한국 역시 후반 42분까지 6명 교체 카드를 사용하다 사실상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43분에 홍철 대신 최효진을 투입시킨 것은 정말로 실험을 하려 한 게 맞는지 의심스럽게 만든 교체 카드 사용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해당 경기를 일반 평가전이 아닌 테스트 형태로 치르겠다는 사전 공지가 없었다는 점이 축구팬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이전에 허정무 감독 시절, 대표팀이 1차례 오만과의 평가전을 이번처럼 선수 교체 한도 초과로 '비공식 A매치'로 치른 바 있었는데 당시에는 허 감독이 사전에 '선수 전원을 경기에 투입시켜 테스트해보겠다'고 밝혔고 이를 오만 측과 사전에 합의하여 경기에 적용시켰습니다. 이후에도 월드컵 본선 직전, 벨라루스와의 평가전 역시 "테스트를 위해 선수 전원을 바꿔 경기를 치르겠다"고 했다가 경기 주최자였던 오스트리아 축구협회의 반대로 결국 6명 한도를 지켜 경기를 치른 바 있었는데, 어쨌든 이러한 사전 공지는 일반 팬들에게 공개적으로 치러지는 만큼 일종의 예의를 갖춘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조광래 감독 뿐 아니라 축구협회 역시 사전 공지를 하지 않았으며 설령 내부적으로 합의를 했다 해도 이를 경기가 끝난 뒤에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결과적으로 논란만 키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림픽팀, 국가대표팀 경기를 2경기 연속 치르는 것에만 집중적으로 홍보해 놓고서 중요한 것을 밝히지 않은 축구협회의 행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습니다.

▲ 축구 국가대표팀과 폴란드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이 두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삭제된 기록, 선수도 처음에 몰랐다?

A매치 무효로 선수들에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2골을 넣어 A매치 3경기 연속 골을 넣은 줄 알았던 박주영, 이날 데뷔전을 치러 2도움을 기록한 신예 서정진, 1년 4개월 만에 국가대표 복귀전을 치른 이동국, 1월 아시안컵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한 손흥민 모두 이번 경기는 그저 자신감을 얻는 것에만 만족했을 뿐 이번 경기에서 정식 기록을 쌓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서정진의 경우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는 도움 기록도, A매치 데뷔전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알았다"고 밝혀 선수단 내부적으로 어떤 성격으로 경기를 치르는지 제대로 공유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일생 한 번 달기 힘든 태극마크를 달고 유럽 강팀을 상대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출전 선수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폴란드전에 뛰고 아랍에미리트전에 뛰지 않은 선수들은 분명히 마음속에 그 아쉬움이 오래 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팀 리빌딩 작업 중이라는 조광래호의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가전은 평가전에 그쳐야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 경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다르기는 해도 최소한의 정해진 부분은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선수들도 동기 부여가 생기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더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폴란드라는 나름대로 수준 있는 팀을 불러들여 A매치 무효로 할 정도로 경기를 치러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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