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미디어 노동자들이 제작 현장에서 폭언과 성희롱 등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촉박한 마감시간과 장시간 노동 등 구조적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공공상생연대기금은 지난 한달 간 제보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겪은 방송현장 언어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미디어 노동자 23명과 15년차 전·현직 프리랜서 PD 4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방송제작현장 언어폭력은 일상에 가까웠다. 한 예능 조연출은 "'지랄을 한다’ '이 파일 잘못되면 죽여버린다' 등 말이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깊이 남아있다"고 했고, 4년차 분장팀 스태프는 "나이가 어리다고 보자마자 반말은 기본"이라고 밝혔다. 연출팀 3년 경력자는 "기본적으로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반말하는 문화"라고 말했고, 연출팀 7년차 스태프는 "욕설, 폭언, 무시 등 기본적으로 듣고 있다"고 했다.

(사진=pixabay)

6년차 데이터 업무 스태프는 부모님 욕 등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했다. 3년차 미술감독은 "촬영감독은 미술감독인 나를 '미술'이라고 소리치며 불렀다. 의견 또한 서로 나누는 게 아니라 허락을 해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연출부 3년 경력자는 "'막내'라는 단어를 쓰면서 '막내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고 했다.

여성 스태프들은 성차별적 발언을 감내해야 했다. 드라마 현장녹음 담당자로 1년 간 일한 20대 여성은 선배들로부터 50대 특수장비운용 팀장을 사귀어보면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50대 팀장이 '돈 많은 솔로'라는 게 이유였다. 그가 실수를 하면 팀 동료들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이렇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15년차 드라마 프리랜서 PD는 "살이 찌자 '너 흑인 몸매 돼 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언어폭력을 넘어 물리적 위협을 겪거나 목격한 사례들도 나타났다. 사람을 향해 휴대전화를 내던진다거나, 뒤통수를 때리는 등의 사례다. 한 7년차 연출부 경력자는 "단역 배우들이 연기를 못한다며 조감독이 이들을 화장실에서 폭행하는 것을 봤다"며 "배우들은 소문이 금방 나는 데다 기회가 더 간절해 문제제기는 쉽지 않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실태의 원인으로는 방송제작 시스템이 지목됐다. 한 지상파 정규직 PD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송을 내보내야 한다는 룰 아래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방송제작현장 인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구조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공공부문 방송사 비정규직·프리랜서 비율은 약 42%에 달한다. 프리랜서 10명 중 7명은 여성이었고, 정부 표준계약서를 활용하고 있는 곳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 대다수가 방송사·제작사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비정규직·프리랜서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방송제작현장에서는 이른바 '턴키' 계약 관행이 만연하다. 회사가 각 팀의 팀장급 감독들과 도급계약을 맺으면, 감독들은 도급계약 제작비로 팀원 인건비를 책임진다. 팀 감독은 물론 팀원인 스태프들 역시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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